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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넘게 꿈은 외가닥! “집에 가야지, 고향 가야지!”
  • 전순란
  • 등록 2016-02-29 12: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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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7일 토요일, 맑음


살레시오 신학생들이 개학을 앞두고 소풍을 가고 없었다. 대전 대둔산으로 산행을 갔단다. 새벽미사는 노신부님과 강신부님 두 분이 집전하셨다. 노신부님은 작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회복되는 중이셔서 미사 경본을 읽는 것이 전에 비해 좀 어눌해지셨다. 내가 40년 넘게 그분을 알지만 90이 다 되는 그분에게 변한 것은 키 정도다. 원래 미국인치고는 작달만한 키인데 10센티는 줄어드셨고 허리도 약간은 구부정하시다.


부드러운 미소와 사랑이 가득한 언행은 40년 내내 한결같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오늘도 미사 후 성당을 나오는 남녀노소 모두를 손잡아 주시고 인사를 건네고 격려의 한 마디로 다독여주시니 우리는 살아있는 성인과 함께 사는 편이다.


살레시오수도원의 아침 미사 


오늘 협력자회의가 있어서 일찍 도착했다면서 노신부님께 들른 60대 여인은 고등학교시절 기차에서 노신부님을 처음 뵙고 그 미소에 감동하여 지금까지 노신부님의 팬이 되어 살레시오 사업을 돕고 있었다. 사제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날마다 지켜보면서 성소를 키워가는 신안동 공동체 젊은이들은 복도 많다.


8시경 문신부님이 뽑아 오신 원두커피와 강신부님이 토스터로 구워주신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성요한병원 환자에게 봉성체를 가신 노신부님도 돌아오셔서 신부님과 아침을 함께 먹으며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수복씨 동생 요안나도 우릴 보러 찾아왔다.


요안나는 환경운동에 평생을 바친 남편을 묵묵히 내조하면서 생계를 도맡아 유지해왔는데 오늘 아침 미사 중에 성당에서 오르간을 치고 있었다. 수복씨도 임동성당에서 아침마다 오르간을 친다는데. 그 집안의 할머니, 어머니, 지금은 수복씨의 부인을 통해서, 그러니까 며느리로 대물림되는 가톨릭 신심이다.


보스코는 오직 돈보스코 성인 덕분에 오늘에 이르렀음을 절감하면서 산다


어젯밤 박병달 신부님의 관찰대로라면, 사람은 살아온 모습대로, 그리던 꿈대로 치매증세를 드러낸단다. 돌아가신 모이세수사님처럼 이북에서 인민군에 징집되어 포로가 되었고 거제도에서 반공포로로 석방되신 분은 60년 넘게 고향을 그리던 마음이 치매가 오자 고스란히 드러났고, “집에 가야지. 고향 가야지.”라며 날마다 수도원 밖으로 걸어나가는 바람에 사람을 찾느라 수사들이 무척 고생했었다면서 하시던 말씀이다.


이처럼 서글픈 분단을 반세기 넘게 유지한 세계열강, 애오라지 그 분단과 증오심을 이용해서 정권을 유지해온 기득권, 지금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면서 온 국민의 얼을 빼놓는 현정권의 총선전략, 그 전략대로 짖어대는 주류언론이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만드는가!


올 겨울도 봄기운에도 지리산 자락은 늘 뿌옇기만 하다 


10시 넘어 수도원을 나와 88고속도로를 달리다 인월공소 수녀님들께 전화를 했다. 그리고 운봉 이신부님, 공소의 레오니아나 수녀님, 그리고 몇 해 전까지 함양에 계시다 서울 구로동을 거쳐 다시 인월로 오신 수녀님과 지리산 톨게이트 옆 ‘지리산흑돈’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감기가 심한 이신부님이 뜨거운 국물을 잡숫고 싶다고 해서 모두 동태찌개를 먹었다.


인월공소에 들러 수녀님들께 커피와 과일을 대접받았다. 새 수녀님은 몇 해 전 함양에 새로 부임한 신부가 공소방문 첫날에 보스코에게 했던 무례한 언행을 아직도 기억하노라면서 나에게 넌지시 일러준다. “그래도 대사님이 말없이 참아 넘기시던 일이나, 오늘도 그 신부님 얘기에 한 마디도 언급을 안 하시는 게 참 놀라웠어요.” 



그런데 옆에서 듣던 보스코의 한 마디에 내가 몹시 속이 상했다. “아들이 사제이다 보면 내 아들이 장차 무슨 욕먹을 짓을 하려나 싶어 할 말이 없어요.” 헐~! ‘우리 아들만은 일반인도 못할 상식이하의 언행을 절대 안 하겠지!’ 하는 믿음에다(그랬다간 이 어미가 쫓아가서 들었다 놓겠다!), 개신교 출신인 내게는 ‘성당은 사제의 희한하고 미숙한 갑질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극기훈련소’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엊그제 호박죽을 끓이다 태운 냄비에 달걀껍질까지 깨뜨려 넣어 박박 문지르면서 속을 달래는데도 한번 탄 냄비 바닥은 좀처럼 처음 같아지질 않는다. 우리에게 혼배성사를 주신 김성용 신부님 말마따나, 내 기질이 아직도 ‘무식한' 프로테스탄트여설까?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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