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월 3일 목요일 맑음
밝은 햇살에 보니 산자락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왕산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날이 길어졌다는 뜻이다. 춘분이 석 주간도 안 남았으니... 어지간히 추위도 갔고, 이젠 벽난로도 마무리할 즈음이라서 재를 쳐서 텃밭 부추 이랑에 뿌려줬다. 텃밭과 화단에는 갖가지 싹들이 앞 다퉈 봄을 이고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튤립, 수선화, 유채, 수레국화, 패랭이, 매발톱, 들양귀비, 안개꽃...
“여보, 내가 대한민국에선 처음 듣는 얘길 해줄까?” 눈은 여전히 책상에 꽂고 보스코가 귀를 세운다. 내 주변에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세 아이를 키운 친구가 있다. 아이들과 자기를 지키려고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해 왔는지 그니의 방어적 태도에서 문득문득 드러난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갑자기 마음을 닫아걸고 빗장을 지른다.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다른 친구가 내게 하던 말. “그니를 보면 딱 우리 엄말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그러고서 그니가 들려주는 친정엄마 얘기. 아버지는 서른여섯에 네 아이를 아내품에 안겨놓고 세상을 떠났단다. 벽촌에서 아이 넷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며 힘겹게 사시던 홀어머니. 하루는 읍에 사는 할머니가 찾아와 엄마가 남자와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나돌더라면서 엄마를 나무라시더란다.
묵묵히 꾸지람을 듣고 난 엄마는 양동이를 들고 측간에 가서 똥물을 가득 퍼 담더란다. 그러더니 할머니와 자기들 넷을 앞세우고 소문을 냈음직한 집으로 가더란다. 그 집 봉당에 올라서서 할머니와 자기들 넷을 양편에 세우고 그 집 여자를 불러내더니만 양동이 하나 가득한 똥물을 그 여자의 머리에 흠뻑 씌우더란다. “네 죄는 네가 알 게다. 똥물을 뒤집어쓴 년의 제사는 조상도 안 받으신다더라.”는 말과 함께!
초등학교 다니던 내 친구는 “그 순간, 언니, 그 광경에 난 갑자기 어른으로 커버렸어요.”라며 긴 한숨이다. 얘기를 듣던 내게도 그니의 가슴이 폭발하던 격정이 그대로 전해왔다. “아아~ 여자 혼자서 그 곤고한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인생인가! 그리고 그 피눈물나는 사연을 우린 어쩌면 그리도 고 쉽사리 흘려듣는가!”
보스코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가 쇠고기를 잘게 썰어 넣은 무국이다. 나는 콜레스테롤 덩어리라며 한사코 그의 국그릇에서 기름기를 건져내고 그는 그게 고소하다면서참 맛있어 한다. 지난 주 광주에 강연을 하러 가는 길에 들려준 보스코의 얘기에 그 사연이 들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엄마 곁에서 보낸 마지막 방학은 정말 서러웠어. 엄마는 아파 누워 계셨고, 집엔 먹을 게 거의 없었지. 그래도 개학하여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기 바로 전날은 돈을 조금 쥐어주시며 고깃간에 가서 고기를 사오라고, 기름갓을 조금 끊어오라 하시더니 아픈 몸을 일으켜 무국을 끓여 주셨어, 하얀 쌀밥과.... 울 엄마가 해주신 마지막 밥상이었어."
보스코가 처음으로 내게 다가왔을 적에 감언이설로 나를 꾄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앙상한 진실, 내가 함께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가난한 미래, 그래서 내가 곁에서 함께 그려가야 할 백지 한 장만을 그는 달랑 손에 들고 있었다, 반짝이고 솔직하고 다정한 눈빛과 함께.... 그래서 나는 그 빈 손보다는 그 눈빛에 내 인생 전부를 걸기로 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네 아들을 혼자서 키우다 영양실조로 죽어간 한 여인의 혼이 그 눈빛을 매개로 나에게 홈빡 씌워지고 만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남편들 얘기가 나오면 “사랑과 전쟁”을 연상시키는 어투가 간간이 튀어나온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사랑은 무릇 일종의 결투!”(militiae genus amor est)라고 했다지만, “아직도 이렇게 싫으니 언젠가 이혼도 불사할 거야. 기회만 와 봐라!” “부부간엔 사랑의 욕구가 영원히 충족되지 않아. 우린 대화가 단절된 상태야.” “나 하고 싶은 대로만 산다고? 그럼,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은 여자랑 살아봐, 그게 얼마 지옥일지.” “주도권을 절대 놓치면 안 돼!” “이제 저 약해진 꼴을 보니 머지않아 내게 백기투항할 거야.” “... ...”
내가 그런 모임에서 들었던 말투들을 흉내내자 "나야 일찌감치 백기투항했잖아?”하는 보스코. “그래 맞아! 당신은 정말 슬기로워. 먼저 무릎을 꿇어 결국 평생 나를 하녀로 만들었으니까.”
10시에 휴천재를 떠나 오후 3시경 엄마가 계신 ‘유무상통’에 도착했다. 다 와서 ‘미산저수지’ 둑을 걸으며 봄바람도 만나고, 몇 달 전보다 뽀얀 얼굴에 예쁜 치매기를 보이는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런 날들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기도 하고, 아흔여섯 살의 엄마가 살아계시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보스코의 눈길을 등뒤로 느끼기도 하고...
유무상통 마당에 서 있는 '일본군위안부' 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