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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시민칼럼] 차이와 경계를 넘어 : 고대 인도로부터의 한 교훈
  • 조성택
  • 등록 2016-03-08 10:45:56
  • 수정 2016-03-08 12: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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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성은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다양한 문화, 종교, 가치관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객관적 척도나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객관’이란 관점 자체가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다원성을 실천하고자하는 다원주의는 단순히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론적 관점이 아니라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하나의 실천 명제이기도 하다. 


다원주의라고 해서 모든 종교를 상대적 진리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원주의라 해도 모두 동일한 진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원주의적 태도에는 하나의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여 다양한 색채로 분광되는 현상을 다종교적 상황에 대한 비유로 활용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과 인정이다. 따라서 다원주의는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론적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취하는 실천적 덕목이다.


다종교적 상황은 비단 현대사회만의 특징은 아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사회도 다종교 사회였다. 초기경전에 언급되어있는 시하 장군의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바이샬리의 한 자이나교도인 시하 장군이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조금은 의심을 가지고 부처님을 만난다. 부처님과의 토론 끝에 시하장군은 불교로 개종하고자 결심하고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거절을 한다. 거절의 이유는 시하장군이 자이나교의 큰 후원자였기 때문에 그가 불교로 개종을 할 경우 자이나교가 입을 사회적 경제적 타격 때문이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부처님은 시하 장군이 계속 자이나교 승려들과 재가자들을 잘 대해주고 물질적으로 후원할 것을 다짐받고서 그의 개종을 허락한다. 불교적 입장에서 자이나교는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외도(外道)의 종교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외도들을 없애고자한 것이 아니라 외도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고대 인도의 다종교 상황은 부처님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아쇼카 왕의 제12석주의 비문은 오늘날 한국의 다종교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른 종교와 공존하고 그것을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열렬한 불교도로 잘 알려진 아쇼카 왕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불교에로의 개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교의 상호 이해와 공존이다.  


그 비문의 내용을 현대적 어법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저, 아쇼카왕은] 모든 종교의 신자들, 그들이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모두를 존경합니다. 각 종교마다 기본교리는 다를 수 있으며 자신의 종교는 자랑하고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일은 삼가야합니다.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이건 자신의 종교에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조화가 최선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도 귀 기울이고 존경해야 합니다.그리하면 자신의 종교도 발전하게 되고 진리도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조성택 ㅣ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철학과 교수



[필진정보]
화쟁시민칼럼은 화쟁문화아카데미(http://goo.gl/1UX8Y9)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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