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2일 토요일, 맑음
보스코가 배나무에 거름을 준다더니 내가 심어 놓았던 참나물과 방풍 신선초를 뽑아서 던져 놓고는 배나무는 자기 일이지만 약초밭은 나더러 돌보란다. 하는 수 없이 호미를 들고 내려가서 일부나마 적당한 자리에 되는대로 심었다. 3년 전 하동에 사는 오마리아 선생 댁에서 얻어다 이곳저곳에 심었는데 돌보지 않아도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자라서는 밭 이쪽저쪽에 마구 세를 불리는 중이다.
너무 실해서 작년엔 미루네 산청 약초 축제에 베어다 팔기도 하고 국수녀님네 효소 담으라고 여러 상자를 베어다 주기도 했다. 아무리 베어내도 그 놀라운 생명력을 주체할 수 없어 올해는 좀 뽑아 버리려던 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생명이어서 막상 뽑혀 뿌리가 말라가며 죽는 꼴은 차마 못 보겠어서 다시 심어 주었다. 이게 인간의 마음이다.
약간은 변덕스럽다가도 바로잡고, 손해가 나도 감행할 수 있고, 돌아가는 걸 알면서도 기다려 주는 능력! 어제 이세돌과 대국을 한 ‘알파고’를 인간이 이기는 순간이다. 사제단장 김인국 신부님이 경향신문에 “져주고 또 져주고 짊어져주고”라는 제목으로 쓰신 글이다(관련 기사보기). 이것이 기계와 다른 인간이다. 정치놀음과 매춘언론에 놀아나며 한반도의 운명을 짐작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들의 종교....
희정씨가 산청에 있는 ‘수선사(修禪寺)’라는 절엘 간다기에 1시 30분에 생초 터미널 주차장에서 만나 희정씨 차로 함께 갔다. 혜진씨와 미혜씨도 같이 왔다. 우리 독서 모임의 동갑내기 삼총사다. 셋은 돈을 모아 여행도 함께 하고 눈 오는 날엔 한라산 눈 속의 우정을 카스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질투하며 “못된것들!”하면서 부러워한다. 모두들 귀엽다.
수선사는 고속도로를 가다보면 펜션 마을이 보이는데 그 길을 오르다 보면 이런데 절이 있나 싶은 곳에 있다. 절의 뜰이 보이기 시작 하면서 우리는 일제히 “예쁘다! 예쁘다!” 탄성을 올렸다. 산과 절, 현판 하나하나 모두가 조화롭다. 우리 중 제일 경건한 희정씨가 대웅전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대표로 인사를 올리고 우리는 구석구석에 자리잡아 앉힌 건물, 샘, 연못, 나무 하나하나 까지 정갈하게 있을 자리에 제 모습을 한 것들을 감상했다. 주지 스님이 25년 전 논 몇 다랑이를 사서 시작했다는 절인데 내 보기엔 아마 전공이 건축이나 목수였을 듯하다.
심지어 마루 밑에 놓여있는 고무신이나 장화까지 가지런하였다. 장화는 먼지가 안 들어가도록 비닐봉지를 하나씩 쓰고 있었다. 우리라면 댓돌 한쪽에 겨우내 밀어 놨다가 뒤집어서 툭툭 먼지를 털어 신거나 플라스틱 박스에 뒤집어 박아 놓았는데... 장화에게도 보호받고 대접받을 권리를 보았다. 그 스님은 혼자 살기를 잘 했다. 어떤 아낙에게 저렇게 많은걸 요구했다면 이런 훌륭한 뜨락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는 여자로 만들었을 게다.
우리는 절에서 운영하는 무인 카페에서 내가 해간 에스프레소와 케이크 조각을 먹고, 오렌지도 까먹고, 잠깐 들어오신 스님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오늘은 절위의 물길에서 받아둔 연못 물위로 산책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나무의 질감과 모양 그대로를 살려 멋진 작품을 창작하고 있었다. 그분에게는 집짓는 일이 도를 닦는 길이며 자연과 정원이 바로 부처님이리라.
그 스님에게 깨우침을 받아 나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톱과 전지가위를 들고 나무에 올랐다. 마당 앞 배롱나무의 너절한 가지를 말끔히 잘라주고(보스코는 오후 내내 배나무 가지를 묶었다) 길가의 탱자나무를 이발해 주었다. 마음 같아선, 베 버리고 싶다. 꽃 필 때 며칠 향기를 맡는 일 말고는 탱자나무는 키울 가치가 없어 보이는데다 억센 가시 때문인지 나무 자체가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통영 앞바다에서 파스칼 형부가 봄과 함께 바다내음이 물씬한 조개들과 시금치를 보내 왔다. 멀리 바닷가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인정미가 물씬하다. 고마워라! 당장 저녁상에 조개를 구워 보스코랑 먹었다. 올 여름에 이신부님이 공소에 오신다면 함께 맞아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