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0일 수요일, 맑음
어젯밤 늦게까지 빨아놓은 커튼 달기가 오늘 아침에도 계속되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저 일을 마저 시켜야 하나? “아직도 허리 아파요?” “아니! 어제도 실은 허리 아픈 게 아니고 졸렸어. 그런데 졸립다 하면 운동(티벳 요가)시킬 게 뻔해 허리 아프다 했지.” “???” 아이들이 음식 먹기 싫으면 “나 배 아파.”하는 그 모양새 그대로다.
보스코가 커튼을 다는 동안 나는 미루가 허리가 끊어지게 아픈데도 힘들여 캐서 그제 나눠 준 초석잠을 손질했다. 하루 종일 캐도 이사야랑 둘이서 두 고랑 겨우 캐낸다는데 아직도 여섯 고랑이 남았다는데... 초석잠을 담아주면서 “손질해서 드리지 못해 미안해유, 마님.”이라니!
그 한 봉지를 손질하는데 무려 네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미루어, 낮에는 캐고 고르고, 밤엔 다듬고 씻어 말리고 할 고생이 훤했다. “누구한테 줄 때 절대로 다듬어 주지 말아요. 고통분담의 차원에서라도.”라고 미루에게 전화해주었다. 농부가 심고 키우고 캐고 다듬고 씻고 말리는 고생을 몸소 체득해야만 음식상에 나오는 누에 번데기 모양의 초석잠 한 접시의 고 살캉거리고 달큰한 맛을 알아보리라.
휴천재 올라오는 길가에 심을 요량으로 면사무소에 팬지를 부탁했더니 배급이 나왔으니 가져가란다. 그 길목에 꽃을 심으면 우선 비닐봉지와 쓰레기와 농약병을 슬슬 파묻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 누군가 탁자 위에 사탕그릇을 놓아두고 맘대로 가져가게 했더니 아이들이 한웅큼씩 집어가더니만 그 앞에다 거울을 세워두었더니 염치만큼 가져가더라는 실험이 생각난다. 거울에 비치는 자기 얼굴도 양심의 눈이 되어주나 보다. 길가에 꽃을 심어 놓으면 농부들에게도 양심을 일깨우는 거울이 되어 차마 쓰레기와 농약병을 거기 버리지 못한다.
나에게 배급되는 팬지는 모조리 갈색이어서 네 상자나 주면서도 “색갈이 곱지 않아 미안해요.”라는 휴천면 산업계장님 인사말이었는데, 정작 그 자리에 심어놓고 보니 들양귀비의 초록잎과 이끼 낀 축대에 어울려 보기가 참 좋다. 오후내내 꽃을 심었다.
느티나무 아우가 지난번 들은 「논어」 강의가 좋았다면서 한번으로 끝내기에 아쉬워 두 번 더 강사를 초대했다기에 기대를 갖고 함양에 나갔다. 7시 30분. 「논어」 강의야 몇 차례 들어본 적 있어 맥락은 집히는데 강사가 예로 드는 사례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 내 귀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한 이유는 물질을 해결하지 못해서다.” 더구나 「오래된 미래」를 언급하는 발언도 인간들의 이기심과 타락상에 대한 고찰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았다. “아베가 (위안부 문제를 두고) 잘못했다고 안 하는데 억지로 하게 한다고 되느냐? 한일관계가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가지 못하는 경우는 그냥 털고 가야 한다.” (정작 피해자 할머니들은 도저히 용서 못한다 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양심도 일본의 사죄를 요구해 왔는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하고나서 친일사상으로 점철된 역사시험 보이콧하면 수능고사 전체가 무효라는 엄포까지 내놓는 친일파가 이 정권이 정신대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자부하지 않는가?)
“김영삼의 3당 합당이 한국사회 민주화의 시초였고, 김대중도 김종필과, 노무현도 정몽준과 손잡지 않았느냐?” (따라서 안철수가 자기가 깽판 내는 덕분에 총선에 대승할 새누리와 연합하여 차기 정권에서 안철수 총리나 안철수 대통령으로 탄생하는 일도 미래지향적인 일이다?)
뉴라이트, 하루 종일 종편방송을 틀어놓고 사는 세대에게나 익숙한 얘기 같아서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우리 사회(적어도 함양일대)에 어른이 없다면서 저런 분이라도 모셔다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젊은 세대의 현실이 서글퍼졌다. 도법스님이 주창하는 '화쟁사상'을 떠올리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났지만 “가치있는 일에만 분노하자!”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어두운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분노할 일이 너무도 많은 지난 8년 세월, 앞으론 더 많아질 것 같은 미래, 해방 후 기득권 수구세력이 한반도에 펼쳐온 온, “오래된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