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8일 월요일, 맑음
어제 저녁 공소 미사 중에 신부님의 강론은 따로 없었고 주일복음을 읽고 각자가 자기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하나씩 뽑아 읽고서 그 구절에 관한 묵상을 나누는, ‘복음나누기’를 했다. 우리 공소의 크기로 보아 소공동체 모임에 딱이라는 신부님의 아이디어였다. 너댓명이 각자가 고른 복음서 구절을 두 번 씩 소리 내 읽고 조금 뒤 소감을 말했고 신부님도 마지막에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구절을 뽑아 읽고서 한 마디 하셨다.
당신은 이 대목에서 하느님 아버지보다 당신 아버지를 생각하셨단다. 아주 열심한 본당회장으로서 본당 신부님을 열성껏 받들고 도왔는데 그 신부님의 인간적 실수에 상처를 크게 입었고 더구나 사제직마저 그만두자 실망하여 교회를 불신하기까지 했단다. 그러던 차에 아들이 사제가 되겠다고 나서자 부친의 첫 반응은 아들의 따귀를 때리며 “안 된다!”였단다. 부제가 될 때까지도 아들의 성소를 몹시 못마땅해 하셨고 신부가 된 후에도 별로 바뀌지 않으셨단다.
본당에 새로 부임하여 우리 공소에 처음 미사 온 신부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런 진솔한 고백은, 사제도 실수할 수 있다고, 교우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안다고, 여러분이 지난 3년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는 위로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당신도 아버지와 화해하려는 노력을 했는지도 모른 채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사제가 부친과도 하나가 못 되었으니 과연 눈에 안 보이는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요즘은 날마다 드리는 미사에서도 성체의 변화에 대해서도 믿음이 흔들린다고 하셨다.
조용하고 병약해 보이는 신부님의 조곤조곤한 그 말씀을 들으며 사제도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타이름이 우리 마음에 고요하게 건네져 왔다. “나만한 신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돈 문제 없고 여자문제 없고, 성당 미사에 충실하고, 가난하게 살고...” 전임사제가 본당공동체를 완전히 와해시켜놓고서도 강론 시간에 당당하게 일갈하던 허세와 퍽 대조적이었다.
어제는 새 본당 신부님이 우리 공소에 처음 오시는 날이어서 공소식구들이 좀 긴장 했을 게다. 전번 신부가 공소에 온 첫날 “거지들이나 피난민처럼 담요(양탄자였다) 위에 앉아있는 꼴이라니...”라며 시비를 걸어왔고, “20년 넘게 이렇게 미사를 지내왔는데요”라는 노인 신자(보스코)의 말에 "신부한테 말대답하는 당신은 뭐야!"라는 폭언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얼마 뒤 공소 회장에게도 “당신 그만 둬!”라는 한 마디로 회장직을 없애고 월례미사도 안 왔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신부님의 시작기도 첫 마디가 “하느님이 부족한 저를 부르셔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라는 겸손한 태도로 교우 모두를 다독여 그동안 앓던 상처가 쉬이 아물 것 같다는 예감을 주었다. 마산교구가 함양성당(그리고 문정공소)에 “병 주고 약 주는구나” 하는 농담이 나올 지경이다. 빵고 신부가 본당신부를 흉보는 이 엄마의 푸념을 듣다못해 “후임으로 누가 오시더라도 새 신부님은 전임복(前任福)이 많겠네요”라고 했는데 그 말도 맞을 것 같다.
휴천강의 봄
요즘 휴천재 맞은 편 산언덕, 휴천강 건너 산비탈을 자주 망원경으로 살핀다. 포클레인으로 매일 무슨 일인가를 새로 벌이고 있고 남정들이 움직이고 있어 새 주인이 누군가 하는 궁금증을 참다못해 오늘 점심 후에 보스코를 걸릴 겸 탐색을 떠났다. 서울에서도 지리산에서도 “지구를 지키는 불사신”을 자처하는 우리니까....
한참이나 땅을 파헤치고 밭을 손질해서 지주를 세우고 사과나무를 심고 있었다. 전 주인 그대론가 새 주인으로 바뀌었나를 살피고 있는데 텁수룩한 사내가 우리에게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먼저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3년 만에! 나랑 함양 농업대학을 함께 다닌 사람이다.
건너편에서 바라보이는 휴천재
그동안 슬럼프가 있어서 세 해나 땅을 버려두고 있었지만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그대로 물러 설수는 없다”며 단단한 각오를 내보였다. ‘서강대연수원’자리도 대학이 부지를 사들이고는 20여년 방치해서 귀곡산장(鬼曲山莊)으로 불리다 새 주인이 사들어 와서 여러 해 동안 뭔가 열심히 손질을 하고 있다. 동네 입구에 마산대학에서 사들인 문정초교 폐교는 갈수록 시커멓고 더러운 귀곡산장이 되어 가는데 그곳도 주인이 수리를 해서 쓰던지 필요한 사람에게 빨리 넘기던지 하면 좋겠다.
앞산을 온통 까뭉갠 남자도 이제 돌아와서 층층의 밭 전체에 사과나무를 심고 버려졌던 축사를 대대적으로 수리해서 감동과 농산물 가공공장으로 만들고 있으니 적이 마음이 놓인다. 우리가 이층마루 식탁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볼 일도 계속될 것 같다.
휴천강 '배타기': 다리에서 물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배가 가는듯한 착시현상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