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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권종상 통신원] 르완다산 커피와 1994년
  • 권종상 시애틀 통신원
  • 등록 2016-05-26 11:32:32
  • 수정 2017-05-30 18: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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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산 커피는 르완다산입니다. 콜롬비아산 수프레모만 주로 마시다가,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르완다산 볶은 커피콩 3파운드를 15달러가 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었고, 비슷한 가격대에서 고르기에 괜찮은 것 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카트 안에 커피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이곳 코스트코에서 이 정도 용량으로 포장해 파는 커피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 커피들이지만, 사우스센터나 4가에서 자체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커피 로스터를 돌리고 있는 코스트코는 그들의 자체 브랜드인 커클랜드 시그내처를 달아 커피를 볶아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커피 신선도라는 면에 있어서는 꽤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셈입니다. 


그 신선도 때문에 그런가, 이 커피에서 저는 자꾸 와인을 느낍니다. 쌉싸래함, 꽃향기, 언젠가 마셨던 스페인의, 리오하보다는 뻬네데스에 가까운… 그렇지만 산도보다는 태닌의 느낌이 더 강한……. 아, 상상은 여기까지만. 이 이상 한다면 저는 오늘 비번 날임을 핑계삼아 낮술을 하게 될 지도 모를테니까요. 커피 콩은 프렌치 로스트 스타일로 기름이 배어 나올 정도로 볶아냅니다. 그렇다면 에스프레소 스타일로 마시기도 좋은 커피라는 것! 알갱이는 콜롬비아산 수프레모보다 작습니다. 물론 배전의 과정이 길어 커피 콩의 크기가 조금은 줄어들기도 했겠지요. 이렇게 잘 볶아내어 까맣고 기름이 흐르는 콩은 이 커피를 길러내는 그 사람들의 피부마냥 반짝거리기도 합니다.


▲ 쌉싸름한 맛이 특징인 르완다산 커피ⓒ권종상

커피 콩을 가득 담은 넓은 바구니를 수건을 쓴 머리에 이고 가는 흑인 여성의 뒷모습. 아마 이 커피 봉지에 그려진 그림 때문에 어렸을 때 보았던 머리에 무언가 이고 다니던 행상 아주머니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저로 하여금 이 커피를 집어들도록 만들었을 터입니다. 지금도 머리에 무언가 이고 다니는 행상들이 한국에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 어쩌면 시골에서는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에겐 낯선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바탕엔 저렇게 삶의 전선에서 최선을 다 했던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리고 르완다 역시 20여년 전의 비극에서 헤어나오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들은 참 많은 면에서 닮았습니다. 


르완다 내전은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1994년, 참 이래저래 잔인한 해였습니다. 20세기 유럽의 마지막 전쟁이라던 코소보 내전 사태는, 일주일 새 80만이 넘는 사람들이 내전으로 학살당한 아프리카 땅에 평화유지군이 들어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끔찍한 것은 이 수많은 사람들이 내전으로 희생당할 때 대포나 항공기나 탱크가 동원된 게 아니란 점입니다. 총, 마셰테라고 부르는 날이 넓적한 정글칼, 낫, 괭이, 망치 등 주변에 흔한 도구로 서로를 공격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역사 안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르완다 역시 그 사례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94년 그 해,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이곳에서 ‘들을 귀 있는’ 동포들은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뉴스에 부르르 떨었습니다. 미국은 그 해 3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북핵 핵위기’에 대해 강경책으로 일관하기 시작했고, 6월이 되면서 자국민에 대한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이곳에서 평화운동을 벌이던 동포들은 미국 내 양심세력들과 대오를 함께 하며,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습니다. 또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르완다에 끔찍한 일이 일어난 그 해, 한반도에서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 했던 겁니다. 그 해 5월 18일, 이미 공습을 위한 명령이 내려졌고 한반도 해상에서는 다섯 척의 항공모함이 공습을 위해 대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 결과 미군 5만명, 한국군 4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미국은 이미 한반도에서 사상자를 낸 경험이 있었고,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이후 있을 선거에서 민주당 정권이 재창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당시 서로 다른 이념으로 갈라져 싸웠지만, 그 당시에 그 이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정확히 알고 싸움터에 나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군인들보다 더 비참했을 보통의 사람들에겐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뉘어 내전과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곳에는 원래 후투족·투치족이란 개념이 없었으며 벨기에가 이곳을 식민지화하면서 이들의 분할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이런 개념을 만들어 퍼뜨렸다고 합니다. 한국의 지역감정, 더 정확히 말하면 ‘지역차별’과 무엇이 다른지요. 


르완다산 커피는 쌉싸름한 것이 특징이고, 흙내음 속에 꽃내음이 살짝 퍼지는 특징이 있다고는 하는데, 커피에 시큼함은 없고 씁쓸함이 강조됩니다. 적당한 산미가 배어나는 수프레모와는 또 다른 맛이지만, 아마 저는 이 커피를 한 두어 주 동안은 꽤나 즐기겠지요. 


이 커피 한 잔을 즐기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이어지는 것은 결국 전 한국 사람이며, 아픈 역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앙가주망(사회참여)을 늘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필진정보]
권종상 : 미국 시애틀에서 우체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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