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5일 수요일, 진한 황사
아침 6시. 도우미 아줌마가 들어와 엄마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세수를 하시라니까 싫다며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워 버린다. 7시가 넘어 아줌마가 아침식사를 가져와 드시라니까 “졸리워!” 하시기에 (그래도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엄마, 성서방이 와요”라니까 벌떡 일어나신다.
그것도 잠시, 밥상에 앉아서도 밥 한 수저를 입에 넣고는 넘기질 않아 “엄마, 빨리 먹어요!” 하며 통사정을 해야 씹어 삼키신다. 때론 밥 먹다 말고 입에 문 채 잠들어버리신다는 아줌마의 호소. 늙으면 애 된다는 말 그대로다.
도봉 세무서에 오전 중에 볼 일이 있어 유무상통을 떠나 부지런히 달려와 연말정산 서류를 준비해 세무사에게 보냈다. 연금으로 사는 사람의 수입이 뻔하고 세금도 꼬박 떼면서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왜 이리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우리나라처럼 전산이 잘 된 나라에서 맘만 먹으면 컴퓨터상으로 세무공무원들이 일시에 해결 할 수 있을 텐데? 떼먹는 인간들은 억.억.억.으로 떼먹고, 탈세 잡는 귀재라던 공무원이 탈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상담사가 되었다 하고... 그래선지 내 지인이 절대 사돈 안 삼겠다는 세 부류의 인간을 꼽은 적 있다. “첫째, 기자(지금은 기레기라 불린다)!” “둘째 경찰.” “셋째가 세무공무원!” 경제인으로서 평생을 보낸 끝에 내린 평가이리라.
점심은 4.19탑 앞 ‘꽁보리밥집’에서 나물과 된장 그리고 열무김치로 쓱쓱 비벼 기분 좋게 잘 먹고 있는데, 1시 빵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전화에 서둘러 집으로 들어와 보스코에게는 2층 청소를 시키고 나는 아래층 청소를 했다. 빵기방 침대 시트와 이불도 새로 했다. 새벽별보기로 출근하고 자정이 되어 퇴근하며 ‘천리마운동’을 하는 우리집 집사가 집안 청소할 겨를이 없었으리라.
수락산 터미널에서 맞이한 큰아들, 무려 7개월 만에 만난 빵기는 도착 하자마자 할 일이 많단다. 우선 도봉구청 여권과에 들러, 전 세계를 너무 돌아다녀 더 이상 입출국 도장 찍을 자리가 없는 여권을 바꾸려 했는데, 신분증이 없다! 도봉면허시험장에 가서 우리 둘 다 면허증을 갱신했다. 준비한 서류를 내자 2분 안에 새 면허증이 척 나온다. 빵고신부 말이 로마에서 이탈리아 면허증 받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는데.... 문제는 우리 아들한테는 10년간을 갱신해주면서 나한테는 5년밖에 갱신해 주지 않다니! 까닭을 물으니 65세 이상이라서 란다! 구청 여권과에 제출된 큰아들 서류도 이틀 후면 여권을 새로 발급해 준다니 그런 점에서도 참 좋은 나라에 산다.
비행기에서 점심을 안 먹은 것 같아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 나도 덩달아 저녁을 먹었다. 배불리 먹고는 기분이 좋았는지 “두 가지를 다 먹어도 (값이) 만원도 안 되는 우리나라 만세!”란다. 유럽에서도 물가가 가장 비싼 동네 제네바에 사니 그 돈으로는 하드값 밖에 안 된다나. 집에 오는 길에 머리도 깎겠다고 이발소 앞에서 내렸다.
단 한나절에 스위스에서 일주일치, 로마에서 일년치 일을 했으니 과연 전순란의 아들답다. 아들이 왔다고 싱글벙글하는 보스코는 혼자 남은 며느리가 찍어 보낸 작은손주 학예회 동영상에 벌어진 입을 못 다문다.
작은손주 시우의 학예회 사진들
아내가 서울과 지리산을 오가며 소나타 트렁크 가득 짐을 싣고 다닌다고 늘 불평하던 보스코가 아들이 여행 가방을 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물건에 감탄을 한다. 주로 지인들에게 줄 초콜릿과 헌옷들이다. 전엔 며느리 지선이가 조카들이 입던 어린이 옷을 시아, 시우에게 입히려고 싸가더니 이번엔 우리 손주들에게 작아진 옷들이 가방에 담겨 역수입 됐다. 그 나이 조카들 입히라고... 헌옷 챙겨 보내는 알뜰한 며느리도 기특하고, 싸준다고 팔 빠지게 들고 다니는 우리 아들도 자별하다.
아마 가난한 대륙의 가난한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다 보니 작아진 어린애 옷가지 하나도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게다. “빵기야, 넌 언제까지 이 일 할 꺼야?”라는 엄마 물음에 “가난한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까지!”란다. 그런데 예수님마저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라고 하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