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4일 토요일, 맑음
새벽 다섯 시면 참새들의 아침식사는 벌써 끝난다. 엊저녁 늦게 묵은 귀리를 테라스에 뿌려주며 “저녁에 많이 먹으면 살찌니까 아침에들 먹거라!” 혼자서 두런거렸다. 오늘 새들이 아침을 먹고 떠난 자리엔 새똥이 가득하다.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식당과 화장실을 구별 않고 자리에서 변을 보다니! 내일부터는 무슨 수를 내야겠다. 화장실 간판을 걸고 안내문자나 화살표를 따라가 똥을 싸도록 간이화장실이라도 차려줘야 하나?
묵은 귀리를 아침내 바라만 보다 비둘기가 먹고 탈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식사를 하는 영리한 놈들이 참샌데. ‘화장실문화’가 저리 엉망인 것은 중국에서 날아온 ‘메이드 인 차이나 참새’여서인가? 아침을 늦게 먹으러 온 참새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하고 있으니까 보스코가 나더러 새마다 기저귀를 채워주란다.
하지가 가까워 오고 여름 장마가 지기 전 이맘때면 늘 오이지를 담근다. 빵기, 빵고가 도시락을 싸갈 때는 한 접을 담갔는데... 애들이 없으니 반접을 담가도 늘 남아 아랫집, 이웃집, 강 건너 집까지 나눠줘도 남곤 한다. 올해도 반접은 담가야지 하다 빵기도 싸 보내고 유난히 오이지를 좋아한다는 태평씨네도 나눠줘야지...
독을 가져다 깨끗이 닦아 오이를 채우고 푸른 마늘 대궁을 위에 얹고 묵직한 돌로 누르고서 물을 팔팔 끓여 부었다. 사나흘 지나 그 물을 비우고 다시 한 번 끓여서 식혀 부으면 되는데 오래 먹으려면 두어 번 더 해야 한다.
무거운 돌에 눌렀던 오이를 꺼내 종종 썰어 양념에 무쳐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도 쌌고, 오이지를 송송 썰어 찬물을 붓고 파와 통깨를 띄워 내놓으면 보리 굴비와 함께 최고의 여름 반찬이었는데... 오이지를 여름마다 세 접이나 담으시던 친정엄마는 겨울 김장때까지 놓아두셨다가 오이 가운데를 갈라 양념을 채워 겨울의 별미로 밥상에 올리기도 하셨는데...
1시경 블란디나씨가 왔다. 4.19탑에 있는 ‘꽁보리밥’ 집에서 점심을 사겠단다. 집에서 걸어 20분쯤 걸리는데 내게는 보리밥과 나물도 좋지만 종일 책상에만 앉아있는 보스코를 걸린다는 게 더 좋다. 나날이 튀어나오는 보스코의 배가 정말 보기 힘든데 그제 한전병원 정기검진에서 담당의사가 “나이 드시면 그런대로 정상입니다” 했다니! 사전에 의사와 입이라도 좀 맞춰 둘 걸!
보리밥집 가면서도 자기는 새우볶음밥을 먹겠다거나 샤브샤브를 먹고 싶다며 배 나올 식단만 찾는 보스코! 식후에 눈꽃빙수를 사주기로 약속하고 보리밥을 먹었다. 블란디나 말이, 자기 아들 천주한테 아침 먹여 보내는 일만큼이나 힘들단다, 결혼주례 선생님에게 보리밥 한 끼 먹이는 게...
보리밥으로 칼로리를 줄이고 빙수를 다시 먹으면 식단 다이어트가 소용없을 것 같아 보스코가 알 수 없을 골목으로 돌고 돌아오는데 워낙 길눈이 밝아선지 정말 눈꽃빙수가 먹고 싶어선지 기막히게 빙수집을 찾아냈다. 하는 수 없이 맘 착한 블란디나가 빙수를 샀고 나는 빙수대장 미루에게 인증사진을 띄워 자랑을 했다, “너만 먹냐? 나도 먹는다!”
식사 후 ‘4.19탑’을 거닐었다. 이승과 저승의 사람들이야 서로 만나더라도 몸을 부딪치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의 사연을 동시에 말하는 우리네 역사는 왜 이렇게 가슴 아프기만 한가? 왜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만 한가? 왜 오이지 독에 눌러둔 돌처럼 선인들의 희생이, 이성부 시인의 「손님」처럼, 지성인들의 양심을 무겁게 내리누르는가?
물위에 핀 수련이 아름다워 둘러보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 옆에 앉았다 가란다. 남편을 30여 년 전 떠나보내고, 세 아들 저금 내고, 막내아들과 장미원 근처에서 산단다. 장가 안 간 아들이 함께 사는 게 좋다며 당신도 요즘 같으면 시집안가고 새끼 안 낳아서 당신 고생 않고 남 고생 안 시킬 거란다.
사진작가인 불란디나가 우리 둘을 찍어주는 광경을 지켜보던 아주머니, 어디서 들었는지 “뽀뽀해!” “뽀뽀해!”를 연창한다. 오래전 떠나버린 영감님과 미처 못 한 뽀뽀가 그립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