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6일 목요일, 흐림
간밤에 많이 피곤했던지 옆방의 모녀는 기척이 없다. 보스코가 오가며 아침상을 차리고 있다. 아래층에 내려가 고구마를 씻어 오븐에 넣고 나서야 모니카가 일어났다. 우리집에서 제일 편한 방이 ‘빵괴방’인지라 베개에 머리를 얹자마자 줄곧 잤단다. 여행의 재미와 피곤은 늘 함께 다닌다.
그 힘겨운 삶을 언제나 밝은 얼굴로 헤쳐나오다보니 미소는 그니의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주변에서 혼자된 엄마들을 간간이 보는데 해처럼 밝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나 불행!’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붙인 사람도 간혹 보지만 밝은 얼굴을 보면 그 각박한 인생길을 홀로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나 헤아려 진다. 성경에도 ‘과부와 고아’를 가엾게 여기라는 명령이 수없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동네 문정리도 70대 넘는 여인들 대부분이 홀몸이다. 등댈 곳 없는 그니들의 외로운 삶은 고려하지 않고 그니들은 아예 처음부터 혼자 살아온 것처럼 대하기 쉽다. 어제 옥구 영감님 아짐을 만났다. 하도 힘이 빠져 보이기에 “어찌 사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니 “지금 막 고추밭에 풀을 매러 갔는데 몇 뿌리 뽑다 ‘이건 뽑아 뭐하노?’라며 기운이 쪽 빠져 던져두고 그냥 왔소” 란다. 고추밭에 풀 한 포기 뽑더라도 병든 남편이라도 아랫목에 누워 있어야 힘이 나고 보람이 있다는 말이다. 몇 달 전 내가 영감님 병세를 물을 적마다 “아랫목에 누우나 앞산 양지녁에 누우나”라고 하던 대꾸는 그니의 본심이 아니었다!
점심에는 성심원 오신부님과 운봉 이신부님을 초대하였다. 두 분 다 본지 오래돼 안부가 궁금했고 무엇보다 인천 월미도 ‘디모니카’ 쉐프가 휴천재에 출장와서 차려주는 음식을 맛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니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필요한 식품을 다 사들고 온 길이다.
전식은 파프리카에 빵가루와 양념한 참치를 채워 넣어 오븐에 구운 파프리카구이, 첫 접시는 조개 관자 스파게티, 본접시는 생선가스, 피망구이, 호박구이, 치커리나물이 나갔다. 후식으로 크로스타티나를 장만했는데 오븐에 넣기 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당황하는 모니카에게 “진짜 쉐프는 실수를 어떻게 반전시키느냐에서 프로정신을 찾는다”며 잘 ‘수리’해서 구워냈더니만 모양은 좀 일그러졌어도 맛에는 이상이 없었다.
식사를 하면서 많은 담소를 주고받는데 어제 사진 한 장을 당신 폰에 보내달라는 오신부님 말에 내가 서툴게 구니까 ‘왜 살어?’라며 놀린다. 살아보니까 이것쯤 몰라도 잘 살아지던데... “글쎄, 우리 왜들 살까?” 우리 집엔 나보다 더 몰라 왜 사는지 좀 더 모르는 듯한 사람도 잘만 사는데... 신부님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말씨에는 주변의 사람을 대하는 너그러움과 예리한 판단력이 늘 함께 묻어난다.
이신부님은 당신이 최근 번역 출판한 「자비의 어머니께 청하세요」라는 책자를 선물로 가져왔다. 교황님에 관한 책자들이 많이 나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들이 보인다. 매주 국수녀님이 보내오는 팜플릿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서 교종 프란치스코와 함께 걷는 길’도 벌써 14호다. 미루도 매일 바티칸 뉴스로 교황님의 강론과 말씀을 올린다.
얼마 전 교황님이 날려 보낸 비둘기를 갈매기(?)가 무섭게 낚아채가는 장면이 화면에 뜬 적이 있는데 전쟁이 그치지 않는 국제정세와 교회의 타락상을 바로잡으려는 그분의 노력을 통째로 무산시켜버리는 보수층(예컨대 바티칸 고위성직자들과 각국 주교들)의 음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 같아서 등이 오싹했다.
3시 좀 넘어 인천으로 떠난 모니카는 9시 30분에야 도착했다고 카톡을 해왔다. 그니의 운전은 휴게소마다 들러 한잠씩 자고 가는 여행이다. 달리는 재미의 ‘스피드감’보다 한잠씩 자고 가는 ‘쉬엄쉬엄’이 그니에게도 딸 키아라에게도 더 절실해 보였다. 그니의 곤고한 삶이 느껴지는 슬기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