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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날이 갈수록 죽은 이들과 가까워지는 나이에
  • 전순란
  • 등록 2016-06-29 10: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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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7일 월요일, 하루종일 구름


“에~ 강신택 상가에서 알려 드리는 말씀입니다. 새벽에 진주에 도착하여 화장을 하고 진주를 떠나 곧 도착할 예정이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을 쉼터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남자 분들은 낫이나 삽, 괭이 등 농기구를 갖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11시경 도착한다 했는데, 마을방송이 서두르는 걸 보니 고인도 가실 길이 바쁘셨나보다.


보스코는 생활한복에 밀짚모자를 쓰고 낫을 들고 나섰다(장례예식서와 성수병도 챙겨들고). 상주들은 마을의 옛길, 부면장댁 농토가 있는 샛길을 걸어서 당산나무쪽으로 올라왔다. 종손인 듯한 소년이 상복에 완장에 위패를 들고 작은아들이 부면장님 영정을 들고 ‘임실댁’이 큰딸의 부축을 받으며 뒤따르고 병원서 만났던 사촌 여인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줄지어 따른다.



마을 사람들은, 이불속에서 뜨는 청국장처럼 폭 파묻혀 세상과 인연을 끊은 ‘꼬부랑할매’를 빼고는 끈 풀린 강아지까지, 다 나왔다. 부면장댁 골목길을 들어서며 울음소리가 좀 들릴 뿐. 다른 장례식처럼 곡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덕촌댁’ 돌담을 지나 ‘용수막댁’ 가까이서 일행을 세우고 ‘마리아할매’가 운다. ‘임실댁’이 따라 울자 아줌마 하나가 남편 앞세운 선배답게 훈수를 한다. “큰소리로 울어! 속이 툭 터지게 큰소리로 울라고!”


내가 기억하기로 그 훈수꾼은 늘 남편에게 손찌검당하며 살았다. 아들이 집을 새로 지을 때도 집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두 개 만들었는데 하나는 평소 드나드는 문, 하나는 영감 손찌검에서 탈출하는 문이었다! 그러던 영감이 죽던 날, 그 아지매가 어찌나 슬피 울던 지 ‘해방의 기쁨’인지 ‘상실의 슬픔’이었는지 지금도 내 기억은 아리송하다.



부부간 금술이 유난히 좋았던 임실댁은 “울래도 목소리가 안 나와! 목소리가 가버렸어!”라고 대꾸한다. 위패와 영정은 사립문을 들어서서 본채 안방을 둘러보고, 아팠을 때 마지막을 누워보냈던 별채를 둘러보고, 화단을 겸해서 부면장이 손수 푸성귀를 심던 마당을 내려다보고는, 그가 지팡일 짚고 늘 나다니던 마을회관 앞으로 걸어 나갔다. 행렬은 한길로 나가 답답할 때 마다 건넌다고 내게 하소연하던 송문교를 건너고, 휴천강을 끼고 돌아 이젠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편안히 누워 강 건너로 마을과 집을 내려다 볼 산비탈로 올라갔다.



다리가 아프다던 노인들도 가까운 이웃의 마지막 길이어선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좀 가파르긴 하지만 임실댁이 매해 밤을 줍던 땅이다. 가을밤 가장 외로울 때 밤 떨어지는 소리도 듣고, 임실댁이 밤 주우러 오길 기다릴 생각에 생전에 이곳을 안식처로 골랐나보다.


화장한 유골함이 묻히는 자리여서 온 집안에 둘러선 가운데 보스코가 예식서를 펴들고 무덤을 축성하는 기도문과 성수를 뿌리고, 지난 번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내가 환자의 손에 쥐어주었던 나무 묵주(왜관수도원 묵주)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유골함이 놓였다. 그가 다시 한번 함에다 성수를 뿌리고서 “강바오로”를 위한 마침기도를 드리고서 뒤로 물러섰다. 아들, 손주, 사위 순으로, 아내와 딸, 고모들이 차례로 흙을 한 삽씩 뿌리자 작은 구덩이는 금방 찼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든 목사가 통성 기도를 하든, 성당 사람이 없어 보스코가 나서서 기도문을 읽든 사랑하는 사람을 영이별하는 순간에 뭔가 종교적인 예식이 든든한 느낌을 준다. 나약한 인간으로 모든 게 소멸하고 파괴되는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까닭이다. 가족들이 묫등을 북돋는 사이에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돌아오면서 두 달 전 자기 집 안방 아랫목에서 동구 밖 양지녁 모친 곁으로 옮겨눕느라 아내가 끄는 쟁기에서 손을 놓아버린 옥규 영감님 산소에도 들러 성묘를 하고 주모경을 바쳤다. 날이 갈수록 죽은 이들과 가까워지는 나이다. 말없이 앞만 보고 가는 보스코도 같은 상념에 빠진 듯하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시 생활인! 집안 대청소를 하고, 민트 차를 만들고, 도미니카1이 준 들깨모도 심었다. 영영 가는 사람을 보고도 나의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여서...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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