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4일 일요일, 맑음
7시. 아침 미사를 드리러 공소로 내려가며 배밭에 갇힌 물까치가 궁금해 다가가보니 몸을 반쯤이나 내밀고 기절해 있던 놈은 정신이 나서 날아갔고 한 마리는 죽어 있었다. 달아난 놈이 한 마리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죽어있는 물까치를 보니 마음이 영 안 좋다.
오늘 미사 제1독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놓고 아브라함과 하느님의 ‘협상’을 들려주었다. 하느님 자비에 기대어 못된 인간들을 어떻게 용서해 주십사 빌까 고민하는 아브라함, 인간의 만류라도 핑계 삼아 하나라도 봐주시려는 하느님의 자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열 사람의 의인’이 없어 지구상에 자취도 없이 멸망하던 도시, 국가, 민족이 어찌 그리도 많았을까? 또 이웃 호전적 민족들의 침략과 광기에 전멸한 역사상 그 숱한 민족들이 꼭 ‘열 사람의 의인’이 없어서였을까?
신부님네 용인 주택(울 엄마가 계시는 ‘유무상통’ 바로 아랫마을에 있다)은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방에 들어서면 ‘이름도 성도 모를’ 벌레들이 방안에 가득하단다. “비키세요, 주인 왔어요!”하고 들어가면 어찌 알아들었는지 쫙~ 사라진단다. 숲속의 단독주택이라 벌레가 엄청 많은데 하느님이 모두 함께 살라 만드셨기에 “너희도 살지만 제발 날 괴롭히지는 마라”고 부탁하고서 별 문제 없이 사신 단다. “뭐야? 신부심이 어제 내가 한 살생을 아시는 거야?”
과연 죄란 하느님이 판결하시는 게 아니고 자기 양심이 스스로 돌아본다는 말이 맞다. 지옥도 하느님이 피워놓으셔서 꺼지지 않는 석탄불구덩이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기를 결코 용서 못하는 뜨거운 후회라는 보스코의 설명이 맞을 것 같다.
신부님이 알고 있던 청년이 성당 활동이나 신앙생활도 열심했는데 취직도 안 되고 갖가지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청년의 소속 성당 신부는, 자살자는 장례미사를 안 드려 주는 교회법이 있다면서 성당 장례를 거절했는데 이신부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그 집을 찾아가서 장례미사를 드려 주셨단다.
보스코 얘기로는, 자살자의 교회 장례식을 금지하던 규정이 새 교회법에서는 없어졌단다. 자살하더라도 죽음의 순간 하느님께 자기의 나약함을 후회하면, 그의 곤고하고 절망적인 삶을 애달파하시는 하느님이 너그러이 그의 영혼을 거두신다면, 저런 금지는 하느님 뜻에 반하는 일이었으리라.
심지어 주님을 은전 30냥에 팔고 나무에 목매달아 죽은 유다스를 두고 “그자는 지옥 갔다!”고 발언하는 일도 가톨릭교회에서는 금지되어 있단다. 하느님은 자비이시기 때문이다. 서울 대형교회 목사들이 수천 명 신도를 앞에 두고 “내가 현시 중에 보니까 김대중, 노무현이가 지옥에 가 있더라!”는 설교를 서슴지 않는 작태는 그 목사야 말로 이미 실제로 지옥에 가 있다는 표시이리라. 구원은 하느님이 베푸시는데 제 눈밖에 나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는 저 정치 목사들의 교회와 그런 설교에 좋아서 흥분하는 신도들이 상식 있는 사람들 눈에 얼마나 혐오스러운 광신도 집단으로 비칠까?
미사 후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소담정에 잠깐 들러 배나무 방조망 얘기며 그 안에 들어갔다 나한테 맞아 기절한 새 얘기를 했더니 “사모님네 텃밭은 동네 물까치 운동장이에요”라면서 유채, 토마토, 가지, 오이, 남아나는 게 없는 까닭이 친환경으로 병 없이 맛있게 키우는 걸 새들도 맛봐서 알고 몸에 좋은걸 찾아먹기 때문이란다. 그게 ‘친환경농사 인증표’란다. 점심엔 그동안 얘기 나눌 틈이 없던 도메니카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정말 무더운 하루였다. 비교적 더위를 잘 견디는 보스코마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책상에 앉아 있질 못할 무더위다. 저녁식사 후 산보를 나갔다 송문교를 건너오는데 버스 한 대가 다리께서 차를 돌리고 있었다. 밤 8시 15분에 떠나는 문정리 막차다.
연이어 ‘쿵!’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승용차에 받혀 사람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버스 기사였다. 일시 기절한 사람을 땅바닥에 편히 눕히고 부채를 부쳐주면서 아무도 그 사람을 움직이지 말라고 일렀다. 얼마 뒤 119 구급차가 도착하여 사람을 실어가고, 경찰차가 와서 현장을 채취하고서 사고낸 기사를 데려가고, 임시기사가 와서 버스를 몰고 가고....
동네 초입에 ‘쿵!’소리와 119와 경찰차의 경보등을 듣고 본 마을 홀어미들이 문정상회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현장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아짐들의 유일한 관심은 “다친 사람이 뉘집아들이고?”, “사고 친 사람이 뉘집 자식이고?” 였다. 그리고 문정리는 다시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