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31일 일요일, 맑음
이모는 이곳 ‘유무상통’을 떠나 다른 자리를 찾아가고 싶어한다. 일탈을 해서 새로운 곳을 찾는다 해도 누구에게나 만족할 만한 장소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만 오래 전부터 딴 곳을 찾는다. 실버타운이나 양로원이나 요양병원까지도 서서히 죽거나 급속히 죽거나 그 속도가 다를 뿐,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곳 실버타운에 오기 전 엄마와 이모는 ‘인보 마을’에 입주를 신청하여 2년간 대기조에 있었다. 15년 전 일이다.
기다리기에 지친 두 분은 신청 즉시 입주할 수 있던, 방구들장 신부님이 막 개원하신 ‘유무상통’에 손쉽게 들어와 입때까지 15년을 잘 살아왔다. 그곳의 대부분은 잘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을 자식들에게 주고서는 매달 내는 생활비에 차질이 생기면, 그때부터 자식들을 원망하기보다 만만한 실버타운이 더 지청구를 듣곤 한다.
오늘 내가 ‘인보 마을’ 들를 일이 생겼다고 하자 찾아가서 입소를 할 가망이 있는가, 알아보겠다고 따라나섰다. 가서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첫째, 등급을 받아야 입소가 가능하고, 둘째, 등급을 받아도 100여명이 줄서서 기다리니 “거기 들어가느니 하늘나라 들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는 게 이모의 탄식이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오는 이모가 측은하다.
엄마는 식사시간을 빼곤 종일 누워만 계시다가 모처럼 딸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세상 구경을 하시니까 두 눈을 반짝거리며 기분이 업~업~ 되어 계시다. 이모가 하는 걱정근심은 엄마의 ‘사려(思慮)의 강’을 건넌지 오래다. 만사를 강의 저 편에 놓아두고 ‘욜단강’ 절반은 노 저어 오신 엄마다. 아이스콘 하나로 애들처럼 기뻐하시고 왼 종일 한마디도 없으신 엄마 같은 노인을 실버타운 직원들은 훨씬 고맙고 미쁘게 생각한다.
용인의 문교수님이 캐나다로 영구 귀국하며 당신이 아껴 쓴 냉장고, 세탁기 등을 우리집 총각들 쓰라고 주신단다. ‘24시간 택배’를 하는 우리 막내 호연이에게 우이동 집까지 실어다 달래니까 오늘 5시경에나 시간이 난단다. 나도 그 시간에 맞춰 원삼에 있는 문교수님네 전원주택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엄마더러 내려오지 마시라고, 더우니 방에 그냥 계시라고 ‘떼놓고’ 왔는데 차가 떠나려는 순간 엄마가 어느새 차창 안으로 나를 들여다보며 활짝 웃고 계신다. 건물 뒤쪽에서 “현관 앞까지만 차태워 달라”는 어린양도 하신다. 저렇게 ‘철 잃은 엄마’를 뒤에 남기고 떠나는 마음이 참 안 좋다. 엄마가 어딜 가시면 엄마 손 안 닿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징징거리며 따라나서곤 하던 내 어린 날들! 지금은 엄마와 나의 배역이 바뀌었다.
그리 급히 달렸는데도 호연이가 원삼에 먼저 와 있었다. 문교수님은 혼자 살며 뭔 가전제품을 그리 큰 걸로 장만하셨는지! 호연이가 알바를 불렀는데 물건을 보고서는 그냥 가 버렸단다. 그 일꾼 참 인생 무책임하고 야박하게 사는 사람 같아서 난감했지만 그 판에서 노는 동생인지라 덩치 좋고 성품 좋은 사람을 얼른 구해 물건들을 차에 실었다.
이 집을 떠나는 문교수님은 이웃과 송별 모임을 가지러 떠나시고, 나는 표총각(이젠 표신랑)과 그의 백설공주 새색시가 준비한, 가정식 멋진 집에서 호연이랑 함께 식사를 했다. 문교수님은 송별도 못하고 떠나시니 아쉽지만, 표신랑이 손수 지어 건축대상을 받았다는 근사한 집에서 다과를 하며 인사를 나두고 그곳에 친한 분들도 소개받았다. 만남도 아름답지만 또 다른 만남을 위한 헤어짐도 우리는 소중히 간직했다. 이래저래 늦어서 우이동 집에 오니 11시가 다 됐다.
그런데 우리 골목에, 그렇게 말했는데도, 옆집 차가 또 주차해 있다. 나 같으면 뭐라 한마디가 목구멍에서 나오려는데 사랑스런 내 동생 하는 말이 “같은 업종인데 차 뺐으면 됐다” 란다. 큰 냉장고가 대문 문턱을 넘을 때 그집 사람을 불러 도움을 받아야 했으니 선은 선으로 돌려받은 셈이다.
누나 일에 발까지 다쳐가며 도와준 막내동생 고맙고, 문교수님네 냉장고 문짝 떨어질 때까지 잘 쓸 테니 교수님께 고맙고, 울 엄마 탈 없이 계시니 고맙고, 사흘간이나 혼자 된 보스코, 엊저녁 식사도, 오늘 아침 식사도, 그리고 오늘 주일미사도 강 건너에 온 살레시안들이 책임지고 보살펴줘서 고맙고...
보스코는 살레시안들과, 나는 유무상통 어르신들과 주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