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의인 故 김관홍 잠수사의 49재를 맞아 5일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김관홍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피해자 구조작업에 참여했으며, 수색 도중 쓰러져 생명이 위태롭기도 했다. 이후 후유증으로 잠수사를 그만둬야 했으며,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오다가 지난 6월 17일 오전 7시경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이후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청문회 등에도 직접 나서서 참고인 자격으로 증언하기도 했다.
추모의 밤 행사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고인과 함께 구조 작업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 시민 등 300여 명의 추모객이 모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회를 맡은 박진 4·16연대 운영위원은 지난해 12월 15일 세월호 1차 청문회 당시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김관홍 잠수사를 회상하며 추모제를 시작했다.
박 위원은 “1차 청문회 때 정부 관계자들은 특조위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심지어 특조위원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며 “그 뻔뻔함에 모두가 치를 떨고 있을 때, 김관홍 잠수사는 ‘저희는 그 당시의 기억이 다 난다.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친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이라는 높은 분들은 왜 하나도 기억을 못 하느냐’고 되물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어 “김관홍 잠수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진도 앞바다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분들은 다 잊었지만 잊지 않는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있다. 아직도 기억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참석자들은 김관홍 잠수사를 추모하는 영상을 시청했다. 약 7분여 동안 상영된 영상에는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했던 잠수사, 그러면서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한 사람의 삶이 담겼다. 특히 “내 모습 자체가 이게 뭐냐고” 하며 절규하던 고인의 모습이 나오자 어두운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김관홍 잠수사의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추모제를 찾아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과 아내, 그리고 고인의 아내와 아이들을 소개했다.
그는 “마음이 아프다 보니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에게 받기만 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아들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사람이었다. 여러분의 온정에 힘입어 앞으로 잘살아 보겠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한테 가자’며 희생자 달랬던 잠수사
이후 토크쇼에서는 고인과 함께 희생자들을 가족의 품에 안겨준 황병주 씨가 나와 참사 당시 잠수사들의 상황을 설명하며, 고인이 짊어져야 했던 참사의 무게를 실감하도록 해줬다.
황 씨는 “잠수사 일을 하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 접해봤다. 잊을 수가 없다. 한꺼번에 여러 시신이 잡히니까 감당이 안 됐다. 막 소리를 질렀다. 누구에게 지르는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며 “안 죽어도 될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그 마음이 더욱 분했다. 학생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있는데, 이 친구들의 마지막이 어땠을까 생각하니까 어떻게 표현이 안 되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관홍이가 ‘엄마한테 빨리 가자’며 시신들을 달랬다. 나는 그 말이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한테 최면을 거는 것 같았다.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관홍이가 그렇게 말하면 시신들의 팔짱이 풀렸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간 잠수사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참아가면서 293구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정부는 ‘잠수 방법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민간 잠수사를 바지선에서 퇴출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관홍이는 끝까지 남아서 한 명도 남김없이 수습하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나오게 되니까 가장 많이 분개하고 아쉬워했다”고 회상했다.
황 씨는 참사 당시 희생자 수색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현황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작업에 참여했던 25명의 잠수사 중 18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고, 5명은 잠수사로 복귀조차 못하고 있었다. 또한, 현역으로 복귀한 잠수사들도 참사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질환약과 수면제 등을 복용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공우영 잠수사들을 비롯해 민간 잠수사들도 참석했다. 황 씨는 “관홍이는 우리 민간 잠수사들의 재간둥이였다. 우리 관홍이를 기억해주고 추모해주셔서 너무 감사한다”며 “유가족들도 힘내시길 바라며, 진실을 꼭 밝히자”고 말했다.
“포옹하는 마음으로 진실 인양하자”
이어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이 답답하고 지치더라도 세월호 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말고 진실규명을 위해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다 막혀있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팽목항을 찾은 여당의원의 행보다. 이것은 세월호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응원을 유력 여당 정치인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그래서 우리는 답답하지만, 미리부터 좌절할 필요가 없다. 세월호 인양과 함께 여전히 진실규명을 향한 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심기일전해서 힘을 모아야 할 시기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참사 피해지원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김관홍 잠수사 법’ 진행에 대해서는 “‘김관홍 법’은 다른 세월호 관련법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여당에서도 큰 반대를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조만간 국회 상정과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필요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작업을 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완성된 소설 ‘거짓말이다’의 저자 김탁환 소설가는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김관홍 잠수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평가를 했다.
김 소설가는 “처음에 김관홍 잠수사는 내가 역사소설가인지도 모르고 역사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순신 장군, 삼별초 항쟁 등의 역사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와서 이야기하곤 했다”며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세월호 문제가 답보 상태를 거듭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고인은 그것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름대로 찾고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를 보면 김관홍 잠수사의 역사적 안목이 필요하다”며 “해방 이후 삼풍백화점, 씨랜드 등 여러 참사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보면 세월호처럼 이렇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유가족과 피해자가 모여 사단법인을 만들고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는 배·보상을 조금 해주면 피해자들이 흩어졌고 (사건이) 덮어졌다. 그런데 세월호는 2년이 넘었는데도 예전 방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여당 쪽에서 당황하고 팽목항을 찾고 있다”며 “이러한 시도가 유일했고 처음인 것에 비해 지금까지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본다면 한 걸음씩이지만 결국 진실규명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고 강조했다.
4·16가족협의회 장웅 진상규명 분과장은 추모제에 참석한 민간 잠수사들에게 고인이 생전에 큰 위안을 얻었던 말을 전하고 싶다며, 김관홍 잠수사와 장 분과장이 나눴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장 씨는 북받쳐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단호하게 “관홍이는 내가 해준 이 말을 제일 좋아했다. 이것을 여러분께도 전하고 싶다. 여러분은 우리 유가족들의 영웅이고 은인이며 슈퍼 히어로다. 내 자식을 저 깊은 물 속에서 끌어올려 주었기 때문에 슈퍼맨보다 더 큰 영웅이다. 그런 영웅들이 힘을 내고 싸워달라. 죽어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이야기를 2년 전 관홍이를 만났을 때 했다. 그런데 우리 애들 만나러 먼저 갔다. 관홍이의 죽음이 내 탓 같아서 장례식 때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제에는 은평구 어린이중창단과 고인의 모교인 숭실고등학교 합창단 등이 추모의 의미를 담은 공연을 선보였다. 참석자들은 하늘로 건너간 세월호 의인을 기억하며, 눈물 속에서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이야기했다. 박진 활동가는 “잠수사들은 깊은 바다에서 희생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포옹해서 우리에게 모셔왔다”며 “포옹하는 마음으로 진실을 인양하고, 마지막 순간을 포옹하자”며 행사를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