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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생선’ 같은 만남, ‘손수건’ 같은 만남
  • 전순란
  • 등록 2016-08-10 09: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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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9일 화요일 구름 많음


“나름 열심히 살고 남에게 잘해주려고 하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서 말을 전해 듣다니 ‘기분 더럽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해 주었는데... 고마움도 모르고... 이곳저곳에서 말질을 하다니 더 괘씸하다. 눈만 뜨면 보고, 피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 안면몰수 하거나 수첩에서 박박, 핸드폰에서 쓱쓱 지워버릴 수도 없는 사람이라서 더 그렇다. 당장 쫓아가 시비를 가리고 무릎맞춤을 할까?”


그러다 사흘쯤 지나면 속도 누그러지고 나름대로 해법도 달라진다. “아~ 그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저렇게 잘해 줬는데 내가 무슨 일로 섭하게 했을까? 난 안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냥 생각 없이 했는데 왜 그리도 서운했을까?” “이럴 땐 우선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다 내가 화내지 않을 만큼 자유로워졌을 때 만나자고 해서 상대방 얘기를 먼저 듣고, 그 담에 내 본심을 전해야지” 여기까지 생각하는데도 사흘이나 걸린다면 아직 도를 많이 닦아야된다.



요즘 한낮의 온도가 33도라면 새벽에는 22도쯤 하므로 밤새 식은 집안 온도를 지키려고 이중창과 커튼을 모두 닫는다. 그런데 초저녁 실내등을 찾아 들어왔던 벌레들이 아침이면 밖으로 나가려고 모조리 커튼에 매달린다. 나나니벌, 땡삐, 노린재, 파리, 하루살이... 모두 어제 밤 무료 숙박을 신고하듯이 줄을 선다.


밤마다 모기에 서너 방씩 물린다고 짜증을 내는 보스코는 내가 마치 모기한테 뒷문이라도 열어주면서 “어여 와서 실컷 뜯고 가!”라고 했다는 투로 내게 푸념을 한다. 어느 구석을 봐도 모기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보니 방바닥에 청개구리가 기어다닌다! “청개구리까지 들어올 구멍이 있다면 모기랑은 동침하고 공생하는 수밖에... 나는 모기하고 친하니까 괴로운 사람이 알아서 하슈” “……”


아침 일찍 형부가 전화를 하셨다. 부산에서 엊저녁 놀러온 조카 신부님들이 보스코를 보고 싶어 한다고, 점심을 함께 들자고 초청하는 전화다. 나는 텃밭에 나가 상추와 루꼴라를 뽑아다 깨끗이 씻고 만토바 케이크를 하나 구웠다. 그 집 식구들 모두 케이크를 좋아한다. 보스코는 C.C.K.에서 나온, ‘자비의 해 묵상 자료’를 두 신부님의 강론에 쓰시라고 들고 갔다. 


두 분 신부님은 그러니까 이신부님 누님의 세 아들 중 첫째와 셋째인데 가운데도 함께 왔다. 언양에서 한 집안에 부제로 돌아가신 형님에, 이신부님에, 두 외조카까지 네 분의 성직자에 수녀님까지 있으니 하느님께 많은 사랑을 받은 가족이다. 삼촌, 이모, 조카끼리도 허물없이 사이가 좋아 참 행복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종사촌들을 본 기억이 아득하다. 외할머니 49재 때 몇을 보았을 뿐이고 10년도 넘었다. 영옥 이모네 사촌들은 가끔 보지만... 만날 필요도 전혀 없고 눈꼽만큼도 아쉽지도 않고 길에서 만나면 얼굴이나 기억날까? 어떡하다 이렇게들 살아가는지 뒤돌아본다. 서울의 중산층이라는 게 남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제 주먹에 든 것 제가 먹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초상이나 치르고 결혼식이나 있으면 형식적으로 얼굴을 한번씩 볼까?



그동안의 오순도순 재미있던 시간을 내려놓고 이신부님은 합창연습 시키러, 수녀님은 부임지로, 조카 신부님들은 저녁미사를 드리러 본당으로, 형부와 언니는 남해로 떠나시니 며칠 간 이신부님 혼자 지내시는 조용한 공소(空所)가 되겠다. 저런 오붓한 가족을 보면 정채봉 시인의 ‘만남’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마리오가 아내와의 한가한 알프스 여가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그니는 회복중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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