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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십일조 내고 받는 풀서비스와 내는 돈없는 대충서비스
  • 전순란
  • 등록 2016-08-19 10: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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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7일 수요일, 맑음


휴가중이어서 늦잠을 잘만도 한데 직업의식이란 무서워 새벽 일찍 잠을 깬 송목사와 애기엄마랑 함께 아침기도를 했다. 예전 우리 우이동집 집사 시절 아침저녁시간에 우리가 드리던 기도소리가 좋아, 담에 장가가면 자기도 꼭 부부가 함께 기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데 실제 결혼하고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그게 쉽지 않단다. 하기야 일주일에 열 번 가까이 예배와 설교를 하다보면 안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염려스러운 것은 그렇게 많은 설교를 하는데 어떻게 매번 준비를 하며 듣는 사람은 식상하지 않을까다. 게다가 성당처럼 3~5년에 한번씩 부임지나 설교할 교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수십 년을 한 교회에서 당회장으로 봉직하며 나름대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다 보면 제 발로 걸어나가기도 힘들고 쫓겨나기는 더욱 마음 상하는 일일 텐데... 여하튼 ‘십일조’를 내는만큼 신도들에게 풀서비스를 해야 하는 예배당은 내는 돈이 없어 대충 서비스로 만족해야 하는 성당과 사뭇 다르다.


그런데 정작 개혁을 하겠다고 개신교(改新敎)가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가톨릭보다 더 진부해지거나 역사상으로 구교(舊敎)가 저질렀던 똑같은 과오를 요즘 와서 저지르고 있어 ‘개신교 출신 구교우’인 내가 더 안타깝다. “그리스도는 없고 인간 구원을 놓고 장사하는 교회”가 한둘이 아니라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난 꼬마들은 조용히 말썽 안 피우고 자기들끼리 잘 논다. 지금 봉직하는 교회의 부목이 여럿이어서 가끔 가족 전부가 함께 모인단다. 그러다 보면 송목사네 아기들이 제일 조용하여 “송목사네 애들은 왜 저렇게 순해? 집에서 패는 거야?”라고 물어오고 “나중에 조용히 얘기해 줄 께”라고 대답해야 한다나? 애 한둘만 낳아 키우다 보니 별난 애들이 유난히 많고 애들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한 부모가 많은데 이 집 역시 우리처럼 하느님께 좋은 아이들을 ‘배급’ 받은 게 보인다.


10시경 송목사네 식구가 칠선계곡으로 가고 우리 둘만 남자 집안엔 고요와 적막이 찾아왔다. 우리가 그동안 누린 특권적인 고요가 손주들의 재롱을 포기한 대가로 주어 졌음을 새삼 깨닫는다. 어제까지 배탈로 고생하던 보스코가 좀 빤하자 오늘 아침식사에서 애들 하는 대로 우유며 빵 등을 손 닿는대로 맘껏 먹더니 다시 화장실을 드나든다. 그러고 보니 애기들 없는 자리에 늘 그가 있었다.


내일 비비안나네 계곡으로 놀러오는 수녀님 일행에게 삼계탕이라도 끓여야 할 것 같아 읍에 나갔다. 간 길에 연달아 열리는 텃밭 호박들을 따다가 ‘빈둥’에 갖다 주었다. 그곳이라면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먹을 게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면 수확물 전부를 소비 못해 문젠데 서로 나누게 주선해 주는 곳이 있어 고맙다. 은진씨도 자기가 여러 개 받았다며 식빵을 내게 나눠준다. 병수씨와 맹순씨가 홍지사 주민소환 서류의 미비한 부분을 보충하고 있었고 이런 시민운동 역시 ‘빈둥’이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말하자면 함양의 문화 살롱이자 민주화성지랄까?



반찬가게에서 스티로폼에 담긴 반찬 몇 가지를 부엌 냉장고에 넣고서 맹순씨는 서울 간다고 했는데, “서울 가서 뭘 보았냐?”니까 너무 더워 인사동 부근과 북촌을 보고서 가회동성당에 들러 잠시 땀을 식히고(성당의 용도=땀 식히는 곳) 방 얻어놓은 곳에서 기다리던 친구를 만나 수다 떤 일이 젤 좋았단다. 서울이란 바로 그런 곳이다. 그나마 친구라도 있으니....


하루 종일 물속에서 놀던 꼬마들이 네 시가 좀 넘어 돌아왔다. 노는 것도 체력과의 싸움. 오늘 저녁 카레라이스를 해주겠다던 선영씨가 애들에게 꼼짝 못해 내가 대신 토종닭을 삶아 만난 고기를 먹고 닭죽을 쒔다. 송목사도 꼬마들도 돌아가면 그 독한 서울 공기 마시는 삶과 동무해서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한다. 체력이 국력이니 부디 모두 건강 하거라!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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