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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홍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 보완작업
  • 전순란
  • 등록 2016-08-22 11:15:59
  • 수정 2016-08-22 11: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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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1일 일요일, 맑음


8월 15일 전후해서 무우씨를 파종해야 한다. 날씨가 더워졌다 해도 8월 중에는 씨를 뿌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다. 먼지가 펄펄 나는 밭에 물을 주고 심는다 해도 하루면 포실포실해지는 흙, 마치 볶아놓은 팥가루 같은 밭을 어떻게 감당할까? 배추모 역시 포트에 씨를 낸다 해도 옮겨 심은 뒤 키울 일이 걱정 된다. 제일 먼저 진딧물에서 구출하고 벌레 잡아주기. 먹튀하는 방아개비 쫓아버리기... 가을 농사도 길이 먼데 물이 없으니 엄두를 못 내고 시작도 못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서울서 내려온 ‘로사리오 성가단’이 공소를 가득 채웠다. 우리 공소식구들은 오히려 자리를 내주느라 그랬는지 몇 집이 빠졌다. 플롯으로 반주를 하고 ‘성가단’이 노래를 하니 우리는 구경만 한다. 성당에서 성가대가 노래들 잘하면 사람들이 노래를 안 부르고 듣기만 한다더니 오늘 우리가 바로 그렇다. 작은 공소안이 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맘으로 박수를 보냈다.



엊저녁 음식이 많이 남았다고 아침도 먹고 가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산을 배경으로 인증사진들도 찍고 뱀사골을 걸으려 떠나기에 우리는 집으로 올라왔다. 10분만 걸으면 자연의 품속으로 깊이 걸어들어가는 지리산골! 




아침부터 밥을 먹었으니 점심은 국수나 해먹을까 했다가 전화를 해 보니 미루네가 식사 전이란다. 점심을 함께 먹자며 산청으로 달렸다. 밥 한 끼 같이 먹으러, 잠시 보고 싶어서, 차 한 잔 하러 이렇게 문정과 산청 (차로 20분 걸리는) 거리를 마냥 오가는 것을 보면 어지간한 사이다. 전번에 맛있게 먹은, 지방 소읍에서는 먹기 어려운 냉면집서 오늘도 각기 곱배기를 시켰다. 식사후에도 헤어지기 싫어 원지까지 달려가서 눈꽃빙수로 마감을 하고서 돌아왔다. 미루네 부부는 세시부터 '지리산, 쉼!' 사람들과둘레길을 걸어야 한단다.




그동안 한쪽으로 밀어 놓았던 잡지 "우리 시"와 "가톨릭 평론”을 읽으며 오후를 보내는데 은진씨가 전화를 했다. ‘홍지사 주민소환’서명 서류 중 선관위에서 반환한 서류 에서 휴천면 주민 10명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달란다.


마을 주소록을 놓고 먼저 본인이 있나 찾았으나 한 명도 없다. 이장에게 전화로 물어 겨우 한명의 전화를 알아내는데 성공. 그러다 겨우 한 여자와 통화가 되어 주민번호 앞자리가 맞느냐고 물으니 맞다 면서도 전화해오고 물어보고 하는 게 귀찮다며 자긴 빼달란다! 선관위가 노렸던게 이거다! 반환한 서명자 10명 중 주민번호가 맞는데도 확인하라고 내려보낸 주민이 세 명이다! 선관위의 못된 술책을 알 만하다.


더 이상은 진척이 안 돼 “역시 사회운동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이라는 경험을 살려 네비에 주소를 찍고 일일이 찾아나섰다. 사람도 주소로 없는 서명인도 있고, 주소를 찾아다니다 보니 처음으로 ‘아토피 대안학교’로 알려진 금반초등학교와, 외지에서 와서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 ‘도담체’도 방문했다. 그곳 이장네 집을 물어 찾아 갔으나 번지도 사람도 없다는 말에는 기운이 빠졌고, 해당자의 친지를 통해 알아낸 전화로 멀리 있는 할머니 서명자에게 전화를 했다가 누가 자기 이름을 도용했다고 성화를 내는 말도 듣고...


그래도 며칠 전 빈둥에서 젊은이 서너 명이 오늘 내가 하던 작업을 며칠째 해내고 있던 모습을 내 눈으로 본 터라 '착한 일을 하고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 계속하자! 끈질기게! 이길 때까지! 우리의 운동구호는 “이길 때까지!”였다.



4시에 집을 나가 돌아 오니 저녁 8시.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것으로 일조하는 남편, 그 새 텃밭과 새로 심은 꽃에 물까지 주고 얌전히 기다리던 보스코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오늘 일을 들려준다. 부부간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동조를 얻는 일은 사회운동의 기본이고 끝까지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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