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8일 목요일, 맑음
이제 오후에 병아리 눈물만큼 비가 내렸는데 과연 옮겨 심은 파슬리는 살아났을까? 궁금해 텃밭에 가 보려 식당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 고추! ‘귀요미’에게 선물 받아 인규씨네 건조기에 넣어달라고 가져다 놓고 잊었는데, 인규씨가 우리 식당 앞에 건조망까지 깔고서 거기에 널어주기까지 했다!
그의 선한 마음에 고추를 맡겨버리고 나 몰라라 했으니 난 참 나쁜 여자다. 꾸득꾸득한 고추를, 상한 것들은 추려내고, 햇볕에 펴 널었다. 저 고추로 김장을 하면, 다 먹도록 그에게 고마운 마음일 게다. 어쩌면 저리 착한 사람이 있을까? 그건 타고나지 교육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나 감성은 바뀌기 어렵다.
어제 독서회에서 토론한 래리킹의 「대화의 신」을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우들은 나와 다르다. 서양의 농담에 익숙치 않고 자기네 실생활과 거리가 있어 맘에 와 닿지 않는단다. “대화에 선을 넘지 말라”라는 문구는 그런대로... 뚱뚱한 사람에게 “대체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가?” 몸이 너무 쇠약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너무 날씬해졌는데요?” 키 작은 사람에게 “키는 얼마나 돼요?” 라고 묻는 일이 선을 넘는다는 것, 정도가 이해가 될 뿐이란다.
아우 하나가 며칠 전 겪은 얘기를 한다. 몸이 너무 아파 체중이 빠지고 어지러워 침을 맞으러 갔다 친구를 만났다. “어머, 언니, 너무 날씬해졌다. 이 기회에 남친 하나 사귀어라” 하더라나. 기가 막혀 “입 닥쳐!”라고 했단다. 다른 회원도 일 년 반 만에 만난 친구 인사가 “언니 오랜만인데 정말 살 많이 쪘네” 하기에 “오랜만에 만나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 하고 와버렸단다. 누구는 엄마가 집에 와 계신데 누가 다녀만 가도 “얘, 누가 왔냐? 뭘 가져 왔냐? 왜 가져왔냐?” 궁금한 게 왜 그리도 많은지, 늙어가며 웬 말이 그리도 많은지 대답도 하기 싫단다. 엄마가 집에 오시면 참으려 해도 지나친 참견까지 하면 미치겠단다. 역시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 받는 우리들에게 대화는 힘든 과제다.
“논어에도 부모님을 궁금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이 큰 효도라 했어. 성심껏 대답해 드리면 나중에 엄마가 영영 떠나신 후 후회 없을 거야” 라고 일러주며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말 한마디 걸지 않는 우리 엄마가 한편 고맙기도 하고 가슴도 아프고, 여하튼 우리에게 대화는 생경하고 서툴다.
또한 이 책을 관통하는, ‘성공하는 대화’의 핵심은 진솔함, 진지함, 진정함이다. 오늘 저녁 모니카의 초대로 그니 집에서 만난 손엘디 선생 부부(「아내가 입을 열 때 나는 귀를 연다」, 「아빠, 최고의 아들이 되세요」등의 저자)를 만났다. 처음 보기에도 그분들의 성품에 그대로 묻어나는 진솔함이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의 손을 잡아 일어서게 돕는 힘인 듯하다(부부가 함께 강연을 다닌다). 홍인외과 원장님 부부도 엘디 선생님 부부 못지않게 따뜻해서 그분들이 하는 포콜라레(‘벽난로’라는 뜻으로 가톨릭의 ‘따뜻한 가정 운동’이랄까?) 운동에서 나오는 향기와 온기가 물씬 풍긴다.
아침 일찍 송 신부님이 함양 ‘정씨고택(鄭氏故宅)’에 찾아오시는데 그곳에서 만나자신다. 내비로 쳐서 찾아오란다. 우리가 내비로 찾아간 곳은 수동 효리의 ‘정씨고택’이었는데 함양본당 교우 정요한씨의 집이었다. 전에 여러 번 만난 일이 있던 부인도 반가워 (거의 3년 만에 만났다) 한담을 나누며 신부님 일행을 기다리는데 안 오신다. 12시가 다 되어 온 전화에는 그곳이 아니고 지곡의 ‘일두(一斗)’ 고택이란다. 그 집안 종가였다. 함양에 어디 고택이 한두 곳인가?
부지런히 ‘일두고택’ 입구로 가서 일행을 만나 함양 상림 앞으로 모셔가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에는 ‘꽃무릇’이 막 피기 시작한 상림숲도 걸었다. 어쩌면 올 가을 지나쳐 버렸을 꽃무릇 잔치를 송 신부님 덕분에 잘보고 사진도 찍었다.
오후에는 보스코가 60년 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뛸 듯이 좋아했다. 초딩 때 같은 동네 같은 골목에 살던 동무란다. 아침마다 그 집에 들러 “기주야! 학교가자!”를 외치면 “기주 밥 먹는다. 들어온나”하시던 할머니! 보리밥도 거르기 일쑤던 보스코가 쌀밥에 침을 꼴딱 삼키노라면 당신 밥그릇에서 절반을 덜어 시래기국에 말아주시던 할머니. 그 쌀밥이 그리도 맛있었다던 말을 내게도 여러 번 했었다. 지금은 제주도에 산다는 그 친구, 보스코의 어린 시절 우정과 그 힘겨웠던 가난과 할머니의 하얀 쌀밥이 고마워 할 주인을 드디어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