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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개에게는 영혼이 있다!
  • 전순란
  • 등록 2016-09-30 10: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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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8일 수요일, 비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가늠하기도 힘들게 종일 보슬비가 내린다. 기대반 의심반으로 ‘텃밭 순시’를 한다. 무는 지난번 서울 가기 전 집중 토벌로 벌레가 좀 수그러든 듯한데 배추엔 벌레 똥이 즐비한 게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전번에 젓가락 굵기의 벌레가 그 동안 배춧잎을 열심히 갉아 먹고서 아가들 손가락만한 굵기로 자라고, 알록달록한 호랑나비 애벌레의 면모를 내보이는 중이다. 엷은 미색의 벌레는 노랑나비, 검정은 검은 호랑나비가 된다.




옛날엔 “종달이 노래 듣고 봄나비 한 쌍, 팔랑팔랑 춤을 추는 봄나비 한 쌍...” 노래처럼, 노랑꽃이 만발한 장다리 밭에서 노랑날개를 팔랑이는 나비를 보면 낭만에 젖으며 가슴이 설레었는데 이젠 나비를 보면 눈물을 머금고 쫓아버린다. “어디다 알 낳아서 남의 농사 망칠 일 있니?” 생활인이 되는 건 슬픈 일이다. 낭만을 위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벌레랑 반씩 나눠 먹는다”는 말을 하지만 우리 밭에서처럼 사그리 먹어버리면 그 낭만은 가시고 “확~ 뿌려버려?” 하는 나쁜 마음이 자꾸 든다.


거제 율리아노씨가 자기 정원에서 캐다가 실어다 심어준 금목서 두 그루가 휴천재 마당에서 꽃을 피웠다. 남쪽 것은 꽃이 엄청 화려한데 동북쪽 것은 그만 못하다. 벌써 2년째 꽃을 보게 되니 그가 홀연히 세상을 떠난지 벌써 2년이다. 사람은 왔다가 가고, 눈 앞에서 사라지면 기억에서도 멀어지지만, 그가 우리 마당에 심어 준 나무들은 그가 남긴 우정의 흔적으로 저렇게 자라고 해마다 찬란한 꽃으로 피어난다. 아내 파울리나에게서야 더 애틋하게 살아나겠지, 거제에 있는 그 집 마당과 뜰 전체가 금목서, 은목서 꽃향기에 묻혀 있을 게다.



팔이 아파서 어지간히 성가신지 이번에는 보스코가 스스로 침을 맞겠다, 약을 먹겠다, 병원에 가겠다 하니 내가 어리둥절하다. 의사선생님은 반복적인 일을 하지 말고 적어도 하루쯤 자판기를 멈추고 쉬라고 하지만 경세원에서는 「고백록」 재판을 위한 교열집이 와 있고, 분도출판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복한 생활」의 초교쇄가 와 있어서 하루 종일 예의 그 ‘반복적인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수고에 대한 보너스인지 라틴어 원본의 책갈피에서 빵고가 생후 5개월 됐을 때의 사진 한 장이 나왔다. 1979년 7월!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보스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남자에게 ‘아들’의 의미는 엄마인 여자에게 느껴지는 것과 또 다른 의미, 핏줄에서 끌리는 찐한 감동인 듯하다.



내일 30일부터 ‘산청한방축제’를 하는데 왕산 길가의 구절초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으로 한 몫을 한다. 산내 마을에 사는 강병규님의 ‘갤러리 지리산 길섶’에서도 ‘지리산 둘레길 구절초 축제’를 한다니 가봐야겠다. 휴천재 마당에는 요즘 공작꽃이 한참이다. 어디서 목줄이 풀렸는지 개 한 마리가 비를 맞으며 우리 마당에서 꽃구경을 한다. ‘개미루2’의 등장인가?


요즘도 “개~ 파쇼!” 아저씨가 자주 돌아다니니 잡혀가지나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 아저씨로부터 탈출한 놈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집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개임은 분명하다. “저리가!” 하면 가고 “이리와 물먹어!” 하며 물을 떠주면 점잖게 마시고 저만치 가서 얌전히 앉아있다. “개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단언을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기어이 기득권은 백남기 농민 시신을 검찰더러 탈취하라고 영장을 발부받았다. “한 해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죽었지 물대포로 죽은 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발표가 나올 게다. 여당이 국회를 보이콧하고 국감에 참석하자는 여당 위원장이 여당 간부들에게 감금당하는 사태, 보스코처럼 살레시오 학교 교육을 받고서도 재벌들의 정체모를 800억 ‘미르 출연금’을 비호하고 온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벌여온 “세월호 900억 모금”을 시비하는 여당 대표의 파렴치를 보고 있노라면, 저 떠돌이 개에게도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따라서 영생하는 혼이 있겠다는 신념이 든다. 아니, 어떤 인간들에게는 없을지 몰라도 개에게는 영혼이 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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