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일 일요일, 흐리다 갬
오랜만에 이신부님의 여동생들을 보니 반갑다. 두 여동생이 함께 있으면 신부님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안정감 있다. 지난번 이신부님이 전화를 하셔서 산청에 내려오시는 길인데 점심을 같이 하자고 초대를 하셨지만 우리가 한창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어서 하는 수 없이 산청에 있을 미루에게 연락을 드리도록 했는데 그니도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신부님은 누구하고라도 점심을 하리라 생각했다가 혼자서는 차마 식당에 들어갈 수 없어 점심을 쫄쫄 굶으셨단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야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반식당에 혼자 가서 밥을 달라하면 주인의 시선이 따갑거나 “1인분은 안됨”이라는 푯말이 붙은 식당이 많단다. 평생을 혼자서 살아가는 사제가 지고 가는, 남모르는 짐이다. 심지어 설이나 한가위 같은 거국적 명절에 혼자서 밥을 굶는 경우도 없지 않단다. 어제 문상을 간 박신부님도 문상을 받는 이라고는 딸랑 조카 둘이었고, 교구청에서 본당마다 돌아가며 1시간씩 미사와 연도를 바치게 조처했지만 인연과 애착을 끊고 출가한 스님들의 절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정식 선생과 함께 저녁을 미리서 먹은 것도 사제의 초상에는 부의금을 안 받지만 식사도 없는 까닭이었다. 식사 중 김선생이 들려준 목격담 하나. “돈을 낸 문상에는 밥을 얻어먹는다”는 풍습이 성당에서도 통하더란다. 얼마 전 어느 성당에서 미사 후 강연을 하고 나오다 중딩 아들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단다. “너 영성체 했니?” “엄만! 내가 짱구야? 봉헌금 냈는데 왜 주는 걸 안 받아먹고 와?” 세상에!
성당 가면 제단에 거창한 십자고상이 걸려 있고, 미사 내내 신부님의 엄숙한 제사가 엄숙한 목소리와 엄숙한 동작으로 올려지고, 부르는 성가는 축 쳐진 가락에다 박자니까 아이들에게 주일미사란 영락없이 ‘예수님 문상(問喪)’임에 틀림없구나! 헌금하라고 엄마가 쥐어주는 봉헌금이 예수님께 드리는 ‘조의금(弔意金)’이라면 혀에 놓자 녹아버리는 성체는 ‘젯밥’ 아닌가?
공소에서 올려진 주일미사에 갔다 오랜만에 신부님 가족을 뵈어 우리 집으로 아침식사를 모셔올 작정이었는데 두 분 누이들 초청으로 되레 우리가 신부님네에 아침을 얻어먹었다. 대신 점심에는 미루도 만나볼 겸 산청 한방 축제에 가기로 했다. 구절초와 코스모스가 가득 핀 왕산 뒷길을 올라 행사장에 도착했다. 텐트로 마련한 12번 부스엔 미루와 이사야가 예쁘게 차려입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예작가와 그니의 남편도 와서 도와주니 피곤한 축제 동안 불쌍한 ‘우리 귀요미’가 힘을 많이 받겠다. 얼마 후 위 작가가 산청버스터미널에 나가서 이지영 로싸리아씨를 데리고 왔다. 3년간 태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막 돌아온 남편이 다른 업무를 맡아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고 로싸리아씨만 남았단다. 미루와 로싸리아를 보니 둘이 퍽도 닮았다. 예쁘고, 재주 많고, 특히 예술적 취향이 같고 더구나 동갑이라는 이유가 앞으로도 자주 오가며 친하게 지낼 것 같다. 김옥수 신부님도 지영씨와 절친으로 미루를 격려하러 오셨는데 참 세상은 여러 모양으로 서로 얽혀 있다.
미루네가 대접한 점심을 하고 우리 문정식구 셋은 먼저 자릴 떴다. 돌아오는 길에 유진국씨 댁을 잠깐 둘러보고 그 부부가 쓴 책도 한권씩 얻었다. 산속에 들어와 자신들의 고유한 모습을 간직하며 나름 열심히 사는 모습은 모두 아름답다.
우리 세 여자는 오후에 잠깐 쉬고 실상사에서 “지리산의 가을 어쿠스틱으로 물들다”라는, 산사음악회(山寺音樂會)에 갔다. 언니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든가 ‘눈 내리는 안동역’ 같은 ‘고전음악’일까 염려했다지만 전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생각이 올바로 박힌 기획자와 가수들이 새길수록 뜻 깊은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두 시간 예정이어서 길다고 생각했는데 세 시간을 넘겨서도 즐겁고 행복하고 머릿속을 신선한 바람으로 휘저어준 음악회였다. 내가 이름을 모르지만 생각이 바른 신인들의 노래를 나눌 수 있어 마음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