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9일 일요일, 맑음
구청에서 분양한 ‘한평 텃밭’에 벼를 심은 마음은?
어제부터 이층 마루 세탁기의 수평을 맞춘다면서 마루를 온통 뒤집어놓았는데 내 속 터지는 줄 모르고 우리 아들은 “천천히 할 테니까 치우지 말고 그냥 두셔요”란다. 일꾼이 오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하나 늘어놓으면 하나 치우는 내 극성에 어지간히 귀찮았던 보스코는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지켜본다. 성씨 부자(成氏父子)가 짜고 하듯 나를 왕따 시키지만 일년 365일 중에 한 열흘만은 참아줄 수 있겠다.
오전 간식을 먹다 엽이까지 올라와 세 남정이 세탁기를 움직이고 수리기사 빵기는 스패너로 바퀴 나사를 돌려 평형을 맞추며 끙끙거린다. 질기고 끈덕지기로 말하자면 한 가닥 하는 전순란인데 그 점에서는 큰아들이 요행히 나를 닮았다. 그 작업은 오후에도 이어지더니 저녁 약속에 나가면서 “엄마, 이제 한번 돌려보시고 그래도 안 맞았으면 서비스맨 불러다 하셔요”란다.
마루에서 침실로 들어가는 문턱에 에어컨과 TV 수신전선이 지나가므로 눈에 참 거슬린다. 전선 두 가닥 넣어서 감출 파이프를 사다 건네니까 보스코가 마지못해 작업을 시작한다. 문 여닫이가 좀 걸리자 보스코는 망치로 파이프를 납작하게 내리 두들기다 파이프 물린데가 벌어지고 만다. 어쩌다 뭘 시키면 꼭 사고치는 것으로 끝장을 내지만, 그래도 제일만만하고 내 뜻대로 되는 남자라곤 이제 보스코 하나다. “그래도 젤 편한 건 서방뿐”이라고들 하니, 실생활에 관한 한 어린이 수준이더라도 그의 눈높이와 서툰 솜씨에 맞추어 아껴 애용하는 수밖에.
아홉시 주일학생 미사에 빵기랑 함께 갔다. 성당 왼편엔 여자반이, 오른편엔 남자반이 앉아있는데 남자애들 장난이 장난이 아니다. 한 애가 네 명의 헌금봉투를 모아놓고 수리수리 마수리 야바위 놀음을 하고, 두 애는 성가책을 장궤틀 위에서 양편으로 베틀의 북처럼 밀어내는 놀이를, 다른 둘은 미사 내내 팔씨름을 멈추지 않는다. (‘어린이는 3분 이상 가만 있지 못한다’는 것이 처녀시절 내가 주일학교 교사로 배운 가르침이긴 하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이 역정이라도 내지 않나 어른들은 조마조마하지만 신부님은 기껏 “진우야, 그만 떠들어라. 나 미사 좀 드리자”가 고작이고, 공지사항 시간에는 핸드폰을 꺼내 쌍둥이 조카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추석연휴 때 두 조카를 골탕 먹인 얘기를 자랑삼아 애들에게 들려준다. 정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집전하는 미사다.
오늘 복음대로, 기적으로 치유 받은 열 명 가운데 하필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돌아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 얘기를 하면서 ‘감사드릴 줄 알아야 한다’는 끝맺음으로 “내 강론을 끝까지 들어준 어린이 여러분 고마워요. 부모님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마쳤다. 40여년 ‘성당 따라다닌’(몇 해 전까지 나는 개신교 신도였으니까) 세월에, 강론 들어준 일에 고맙다는 인사를 처음 들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보스코가 신부님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조카들 사진을 보여달라고 부탁하고 그 사진을 보면서 둘이서 환담하는 모습도 참 흐뭇하였다.
성당에서 돌아오다 상훈이 아빠를 만났다. 헌 자전거를 내다버리려고 끌고 가는 중이었는데 빵기가 고쳐 쓰겠다며 얻어왔다. 엽이랑 둘이서 분해하고 손질하더니 바퀴 하나를 뽑아 고쳐야겠다며 들고 나갔다. 자전차포에서 바퀴를 수리했으니 뒤꼍에 두고 출근길에 전철역까지 타고 나갈 게다. 엽이 자전거는 멋있고 비싼 제품이어서 ‘총각 재산 제1호’라면서 늘 자기 방에 들여놓는다. 자동차를 사더라도 ‘총각 재산 제1호’라면 안방에다 주차할 생각인가 보다.
점심은 4·19 앞에 있는 꽁보리밥집에서 우리 부부, 빵기와 엽이 그리고 성훈씨랑 함께 먹었다. 식사 후에는 집에 와서 다과를 들며 얘기를 나누었다. 이성훈씨는 80년대부터 우리와 오가면서 빵기에게는 NGO 활동에 몸담고 제네바에서 공부하는데 멘토가 되어준 형이다. 심지어 제네바에서 자기 살던 셋집을 빵기네한테 물려준 사람도 성훈씨다. ‘인권재단’, ‘세계민주화 포럼’, 경희대 대학원 강의로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데도 변함없는 우정을 보여주고 그 인연이 아들 대에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하고 희망차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