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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무리 못생겼어도 내게 귀한 건 내 새끼, 내 배추
  • 전순란
  • 등록 2016-10-12 09:55:08
  • 수정 2016-10-12 09: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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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1일 화요일, 흐림


새벽에 들어온 빵기가 3일간 강원도로 연수를 간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채비를 한다. 호천이 말로는 “걔가 애야? 서울 계신 장모님 댁에 있다 가면 되지 서울꺼정 올라와 뒷바라지야? 아침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애를 밥해주겠다며 고개 빼고 바라보고 있지 좀 말라고! 버스타고 함양에 내려와서 인사나 한번 받으면 될 껄 갖고 누나넨 참 별나다고!” “넌 애 없어서 아들이 어미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집에 안 들어와도 손 뻗히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너희 개 한 마리가 죽었을 때 너네 슬픔을 내가 절감 못하듯... 사람은 각자의 느낌과 그 크기와 모양이 다르단다”고 대꾸는 했는데...


“정말 나만 아들에 대한 애절함이 별난가?” 하는 성찰도 해 본다, 동생의 충고 덕분에. 빵기가 없는 틈을 타서 실버타운에 엄마를 뵈러 왔다. 이모와 둘이 앉아 재미없던 밥상이 딸 하나가 오자 장마 끝에 해님 보듯 환해진다. 내게 빵기만 자식이 아니고 나도 엄마의 딸이고, 자식에 대한 애뜻함 역시 열 살짜리한테나 육십대 중반을 훨씬 넘은 딸에게나 그 질감은 똑같다. 총체적으로 ‘엄마와 아이’로 매듭을 지을 수 있다.



미리내 오는 길에 소담정 도메니카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텃밭엘 가보라고 했다. 들깨가 다 익어 그걸 베러 문정에 갔다가 우리 배추밭을 들여다보니 겨울김장 담그기는 영 틀렸단다. 남의 집 삼분의 일도 안 되는 크기는 치지 않더라도, 벌레가 어찌나 뜯어먹었는지 꼴이 꼴이 아니란다. 내가 중간에 한번 가보겠다니까 “와보신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일도 아니고, 보고 가시면 속만 더 상할 테니 아예 생각을 접고 맘편히 계시다 오세요” 란다. “대신 올 겨울엔 농약과 비료 팍팍 친 일반배추 한번 사서 김장을 해보세요”라고 놀린다. “어디 보자” 아무리 못생겼어도 내게 귀한 건 내 새끼 듯이,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 배추’에 대한 미련의 끄나풀을 움켜쥔다.


‘유무상통’, 엄마의 실버타운에 도착하니 12시 45분으로 노인들의 점심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시간이다. 그래도 엄마의 식판에는 반찬과 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밥만 한 술 더 가져오면 내 몫의 점심으로 충분 했다. 언제나 밥과 국 국물만 떠먹고 반찬은 손도 안 대신다고 엄마의 ‘못된 식습관’을 나무랐는데 오늘은 그 찬을 내가 반겨 먹을 수 있었다.


엄마의 '화신백화점'에서 


오후에는 엄마를 싣고 코스모스가 핀 꽃길, 벼가 누렇게 익은 동네 길을 돌고 돌다가 슈퍼에 가서 이모님 슬리도 사드리고, 나중에 굼굼할 때 몇 개씩 쪄 드시라고 감자만두도 사드렸다. “여기가 어디에요?” 라고 물으면 무조건 “백화점”이라신다. 그렇게 ‘화신백화점’ 좌판에 앉아 튀김과 왕만두에 식혜도 드시고 자못 만족하셨다. “딸이 오니 좋다. 맨날 누워만 있는데 세상구경을 실컷 했구나!”


비틀거리면서도 걸어 다니시고 휠체어 미느라 긴장하셨는지 8시부터 잠을 청하신다. TV소리는 아무리 커도 잠드시면서도, 일기를 쓰는 내 펜 소리엔 잠이 안 오는지 나더러 자꾸 자라고 하신다. “엄마! 나 일기 쓰는 중이에요” 좀 있다가 또 자라시면 “엄마! 나 숙제하는 중!” “엄마! 나 공부하는 중!” 하다가 정말 엄마를 마지막으로 설득시킨 한 마디. “엄마! 나 이 글 쓰면 돈 벌어” 했더니만 “그래? 그럼 쓰고 자거라. 엄마 먼저 잔다”라고 매듭을 지으신다.


서울집 3층다락의 창문과 커튼 


혼자 남겨진 보스코는 점심, 저녁을 스스로 차려먹고, 삼층 다락 치우는 일로 한참이나 땀을 흘렸을 게다. 테라스에 올라온 인동초를 손질하여 깔끔하게 다듬었다고, ‘작은 차사장’이 와서 아래층 마루 한 평 내단 지붕에 물받이를 하고 갔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여느 때 같으면 한 시간이 멀다하고 그에게 전화를 해서 챙겨왔는데 요즘은 내 전화도 뜸해진 걸 보면 그의 ‘홀로서기’가 제법 돼가거나 ‘물가에 애 세워놓은 듯한’ 내 ‘근심꺽쩡’이 좀 줄었거나 둘 중 하나겠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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