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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삶과 죽음만은 하느님이 알아서 하시는게 다행
  • 전순란
  • 등록 2016-10-14 10:14:07
  • 수정 2016-10-14 10: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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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맑음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일산에서 처방 받아 드시던 ‘치매약’을 그만두시고 실버타운 1층에 있는 ‘대건효도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드시면서 훨씬 생기가 있다. 호천이댁이 하루 종일 병원을 모시고 다니며 검사를 하고 처방을 받아 3개월 치 약을 타면 그걸 계속 드셨는데 백일 전 갓난아기처럼, 낮과 밤이 바뀌어 낮에는 종일 비몽사몽하며 침대에 누워계시다가, 잠을 못 이루어 밤이면 냉장고 문을 열고 앉아 초콜릿이나 야쿠르트 아니면 포도알이라도 따잡수시다가, 침대에서도 부스럭부스럭 사탕을 까드시다가, 화장실은 2,30분 간격으로 오가시다가, 새벽 너댓시에야 겨우 잠들면 도우미 아줌마가 아침이라도 드시게 하려면 매일 실랑이를 했었다. 한 달에 한번 엄마한테 가서 자던 나까지 덩달아서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정신이 없었다.


안개낀 미리내 골짝은 바다 같다 


그런데 어제 지켜보니 낮에는 계속 깨어 계시고 밤 9시에 잠들어 아침 6시까지 숨소리도 고르게 잘 주무신다. 간호과장님께 물으니 우선 ‘치매약’을 점차 줄여 이전의 4분의 1만 들게 하고 혈압약도 끊게 했고, 이렇게 매일매일 상항을 봐가며 조정을 해드리고 있단다. “‘삶의 질’을 생각하면 밤낮 없이 침대에 누워 ‘길게 사는’ 걸 결코 바람직하지 않게 본다”는 말에 “저 사람은 정말 노인을 바로 보살필 줄 아는구나” 싶어 엄마를 맡겨도 안심이 된다.


10시가 되어 “엄마! 나 이제 가 볼 께요”라고 나서니 눈을 흘기며 “금방 가려면 왜 왔니? 그렇게 가버리면 꿈속에 다녀간 듯 허전해”라면서 ‘떼’를 쓰신다. 참 딱하다. 그래도 “어여 가서 성서방 밥해줘야 해요”라는 말에는 포기를 하신다. 옆방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도우미 아줌마가 엄마를 달래서 방으로 모셔갔다.


안개가 걷힌 노곡저수지


요즘 중부고속도로는 터널공사로 너무 길이 막혀 오늘은 ‘김기사’가 가라는 대로 경부로 가다가 100번 도로를 타고 돌아서 집에 왔다, ‘또 다른 아이’가 기다리는 빵기네 집으로. 보스코는 어제 오후 내내 3층 다락을 치우면서 버릴 것을 들어다 2층 테라스에 늘어놓았다. 간단히 점심을 차려먹고 각자 ‘병원행’! 우리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보스코는 3시 예약이어서 ‘공안과’로 먼저 가고, 나는 3시 30분 예약이어서 나중에 뒤따라 가기로 하고 2시 예약인 우리집 주치의 ‘서정치과’엘 가서 부분틀니를 손질했다. 10여년 쓰니 자꾸 헐거워져 자칫 씹어 삼키게 생겼다. 곽선생님은 부분틀니를 조여 주면서 쓸데까지 쓰다가 부러지면 임플란트를 하라신다. 예전엔 환갑 나이만 넘으면 이가 성한 사람이 별로 없어 앞니 한둘로 적당히 음식을 문질러 먹었기에 지금처럼 오래 살지 못했는데, 이가 좋아지고 영양도 충분히 공급되니 지금처럼 8, 90을 바라보며 오래 사나보다.


하지만 실버타운에 갔다오면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싹 가신다! “그럼 넌 몇 살까지 살고 싶고, 그럼 이젠 몇 년 남았느냐?”고 물어오면 할 말이 없다. 늙음과 죽음이 ‘내 문제’가 되었을 때는 자신 있게 지껄일 사람 몇 안 된다. 그것만은 하느님이 우리한테 묻지 않고 당신이 알아서 하시는 게 퍽 다행이다.


3시 30분 종각에 있는 공안과엘 갔다. 한두 해에 한번 하는 ‘정기검진’인데 “작년과 같고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현상유지의 진단이 나왔다. 보스코의 눈에는 비문증(飛蚊症)이 심하지만 손대야 할 만큼 악화되지는 않았고, 백내장도 아직은 수술할 필요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여하튼 보스코는 아직 하루 10시간 가까이 번역을 하고 나는 나름대로 운전을 하면서 가사와 주변사회에 이바지하고 있으니 그것도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먹는 블루베리 덕분이라고들 한다.


낙산 성곽이 복원된 동대문 풍경 


보스코의 눈검사는 동공을 늘려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는 진찰이어서 한번 늘어난 동공은 쉽게 돌아오지를 않아 땅속 대신 땅위로 가는 차(101번 버스)를 타고 돌고 돌아 집으로 오면서 서울에서는 다신 버스를 타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왜 두더쥐가 땅속에 살며 땅위로 절대 안 나오는지 알법하다. 어느 새 우리도 서울만 오면 지하철 ‘두더쥐’가 돼버렸다. 차는 어디서나 막히죠, 매연에 목은 아리고 눈은 아프죠, 공기는 숨쉬기 힘들죠... 서울살이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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