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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웅배] 내가 ‘백선하’다!
  • 김웅배
  • 등록 2016-10-17 10:23:56
  • 수정 2016-10-17 10: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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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백선하’에게 돌을 던지랴?


의사 백선하는 정권의 ‘진정한’ 말단 의료 기술자일 뿐이다. 그를 나무랄 수가 없다. 물대포로 직사를 해서 백남기를 쓰러뜨린 말단 경찰도 하수인일 뿐이다. ‘나는 결코 백남기일 수 없다. 나는 백선하다’ 나도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그같이 했을 것이고 다른 의사들도 그의 입장이었다면 그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내가 살수차 위의 경찰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고, 그 일은 그 경찰이나 의사 백선하의 ‘양심’에 맡길 일이 전혀 아니다. 만약에 내가 무시무시한 권력과 가까이 있었다면 나도 ‘백선하’가 될 확률 100%다. 세상에 ‘백선하’는 거의 다 보호해야 할 자신의 가정이 있으므로 무도한 정권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생생히 살아있는 권력은 국민 모두가 강제로 ‘백남기’가 아닌 ‘백선하’이길 원하니까!  


왜 권력은 백남기, 백선하를 있는 그대로  놔두지 못할까?


▲ ⓒ 곽찬


정녕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만 챙긴다. 예언자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짓을 행하고 있다.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 그들은 역겨운 짓을 저질렀으니 부끄러워해야 하는데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얼굴을 붉힐 줄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쓰러지는 자들 가운데에서 쓰러지고 내가 그들을 징벌할 때 넘어지리라. 주님이 말한다. (예레미야 6,13-15) 


이 권력에 반대하는 권력도 존재한다. 그 권력도 상위 1%에 속한다. 권력을 타도하는 권력이 더 무서운 권력일 수 있다. 그들은 현재의 권력과 적당히 야합한다. 권력에 대항한다는 권력은 권력의 개보다는 좀 더 영리한 권력일 뿐이다. 그들도 어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입은 버터보다 부드러우나 마음에는 싸움만이 도사리고 그의 말은 기름보다 매끄러우나 실은 빼어 든 칼이라네. (시편 55, 22)


그러나 일반 ‘백선하’는 그럴 수가 없다. 불행히도 그들은 상위 1%에 속해 있지 않다.


그런데 상위 1%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권력자? 부자? 지식인?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상위 1%는 보통 부자라고 인식하는데 그 부자 속에 모든 직군이 일부 포함된다. 우리는 착각한다. ‘김주열’ ‘이한열’ ‘박종철’ ‘백남기’가 우리일지 모른다는 착각이다. 그런데 그 착각은 정말 엄청난 착각이다. 그들은 감히 우리가 함부로 입에 올릴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는 정확히 ‘백선하’이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다. 1%에 진입하려 애쓰는 우리 모두가 ‘백선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권력의 쳇바퀴 안에서 열심히 바퀴를 돌리는 다람쥐가 아닌 개, 돼지이다. 무소불위 권력의 시녀로 안주하는 것이 우리 보통 ‘백선하’들의 본능이다.  


간교한 자의 수단은 사악하여 그는 술책을 꾸미고 가난한 이가 올바른 것을 주장하여도 거짓말로 빈곤한 이들을 파멸시킨다. (이사야 32, 7)


상념은 꼬리를 문다. 이 정권에는 근본적인 양심이란 것이 있나? 아니 어쩌다가 왜, 양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야 할 지경이 되었나? 양심이란 단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 나라는 극도의 아수라로 변해간다. 자신들의 ‘가장된 양심’을 모든 국민의 양심으로 바꿔치기 해버린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특정한 몇몇 ‘권력을 휘두르는 나쁜 사람들’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친일파’때문에? 천만에 말씀이다. ‘백선하’가 그 사람이다. ‘김진태’가 ‘백선하’이고 그는 바로 나다. 나도 ‘백선하’처럼 ‘양심적으로’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이 무도한 정권의 힘은 지금 온 누리에 좍 퍼져있다. 누가 감히 맞서랴? 이런 상황에서 나는 ‘백선하’일 수밖에 없다. 이 ‘백선하’들이 현재의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놓았다. 백남기는 결코 이런 ‘이상한 나라’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백선하’를 이해하자.  그의 ‘진정성’있는 ‘양심’을 폄훼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는 바로 나니까. 

 

그들 입에는 진실이 없고 그들 속에는 흉계만이 들어 있으며 그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들 혀는 아첨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5,10)


이들은 권력자의 편에 서서 그의 비위를 맞추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권력자의 칭찬은 멀쩡하던 사람도 아첨꾼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세상에 ‘백선하’는 다 그렇다. 누가 우리를 ‘김진태’ ‘백선하’로 만들었는가?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너는 악을 저지르는 자들 때문에 격분하지 말고 불의를 일삼는 자들 때문에 흥분하지 마라. 그들은 풀처럼 삽시간에 스러지고 푸성귀처럼 시들어 버린다. (시편 37, 1-2) 그러나 고귀한 이는 고귀한 것을 계획하고 고귀한 것을 위하여 일어선다. (이사야 32, 8)


전경들에 의해 둘러싸인 시민의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말없이 서 있자! 광장에 직접 나와 촛불을 들고 말없이 서 있는 시민들은 적어도 ‘백선하’는 아니다. 아니, 확신컨대 그들은 ‘백남기’ 임에 틀림없다.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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