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비가 오다 해가 뜨다
또 비가 온다. 아침에 눈 뜨면 일기예보를 보고 오늘 비가 좀 오려나 애태우던 긴 여름을 지낸 터라서 처음엔 고맙기도 했다. 서울에라도 가 있을 때는 사흘에 한번 오는 비가 하느님이 논밭과 텃밭과 화단에 물을 주신다고 흡족해 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잦아지자 식물들은 물이 안 빠져 뿌리가 썩고 잎이 지러버렸다. 배추 두 폭 한 묶음이 8천원 밑으로 안 떨어지고 상추도 댓 잎 묶어놓고서 돈 천 원씩이나 받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올 겨울김장은 배추 그림 놓고 해야 할 게다.
게다가 시국은 더 뒤숭숭해져 갈피를 못 잡겠다. 국민들의 이런 ‘위기의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저 여자의 기자회견이라는 것은 소도 개도 웃겠다. 노회찬 의원 말마따나 “죄의식을 아예 못 갖는 확신범”인지 사리판단을 도대체 못하는 꼭두각시인지 듣고 있는 아낙들마저 어안이 벙벙해진다.
보스코가 광주 김 대주교님을 뵈러 가면서 이부영 의원이 광주에 온 길에 함께 하기로 했기에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을 달렸다. 어제 밤 바오로딸 수녀님께 드리려 플래시를 들고 텃밭에 내려가 호박과 가지를 따다 놓았기에 챙겨다 드리며 내 페친 전 수녀님도 만났다. 수녀님들과의 얘기는 당연히 ‘최순실 대통령’과 ‘순실개헌’, 그리고 오늘 있을 ‘백남기 어르신 시신탈취’ 영장집행이 화제다.
시국미사나 기도회에 가면 늘 앞자리를 차지하여 그 뒷심이 되어주는 분들이 수녀님들이다. 성가소비녀회, 살레시오수녀회, 바오로딸 등 여인들의 역할은 갈릴래아로 예루살렘으로 예수님 따라다니던 여인들을 많이 닮아,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여인들이나 모든 상황이 바뀐 게 별로 없다. 그니들에게도 이렇게 사회참여 하는 것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이 있는 ‘집안사람들’이란다.
내 생각으로는 자기가 태어난 곳이 부유한 처지였더라도 가난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근본 사랑과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걱정근심 없이 사회변혁에 투신할 것이다. 역시 사람 문제다. 도대체 어려움을 모르고 독재자의 대궐에서 떵떵거리기만 하고 살아온 박근혜와, ‘아마도 가난했던’ 최순실의 탐욕, 그리고 그 방자한 딸이 전국민의 마음을 이리도 억하게 만들고, 진흙탕 속에서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유승민)를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이라니...
정오가 되어 수복씨가 큰아들 안드레아를 데리고 왔다. 우리 일행은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수복씨가 나를 처음 봤던 날(45년 전) 얘기를 꺼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살레시오 수도회에서의 수련까지 수십 년을 함께한 친구가 웬 여인을 만나 떠나겠다고 하던 날의 황당함”, “아무리 말려도 말려지지 않던 자신의 무력함”, “한 남자를 그 긴 여로에서 발길을 돌리게 한 사랑의 위대함” 등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분의 어눌한 말투와 그 특유의 진솔함이 우리를 마음 따뜻이 웃게 했다.
바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내가 안됐던지 이부영 의원이 보스코가 사제 안 되고 지금까지 해오는 일이 교회에도 사회에도 더 보람있고 훌륭하다고 거들었는데, 나로서도 진정 남편을 훌륭하게는 못 만들었더라도, 훌륭한 자리에 열심히 모시고 다니는 충실한 동지는 돼야겠다.
보스코는 의정부 교구 마도동성당 강연이 내일 있어 이의원님과 KTX 편에 서울로 올라가고, 수복씨 부자는 집으로 가고, 나는 혼자서 시장을 보고 어두워지는 산길을 달려 지리산 휴천재로 돌아왔다.
혼자 있는 날이니 뭔가 나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보스코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할 일이 기다리는 부엌에 들어서니 엊저녁 설탕에 절여 놓은 생강이 날 쳐다본다. 절인 물은 짜서 병에 담아 생강차로 섞어 마시도록 냉장보관 하고, 생강은 한번 끓여내 물은 차로, 생강은 편강으로 만들었다. 저녁 늦게까지... “내일은 제발 책 좀 봐야지...”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