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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엄마는 할 수 있고 엄마만 할 수 있다!
  • 전순란
  • 등록 2016-11-21 16: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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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일요일 맑음


로마에서도 박근혜 퇴진 시위를 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들 빵고 신부의 소식도 왔다. 올림픽에서 국가 대표선수가 금메달이라도 따서 지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열광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신이 났을까? 그래도 나라의 아픔에 함께하여 바른 나라를 세워보려는 국민의 열망과 그에 따른 행동이 너무 대견하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다. 저런 형편없는 대통령 대신에 이렇게 훌륭한 국민을 주셨다.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던 자신만의 일만 안다는 젊은이들에게 타인의 일이 바로 내 일이기에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이타적인 눈과 행동하는 양심을 이번 기회에 깨우쳐 주셨다.




보스코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도 가능하다고, 추미애 대표가 한 말에 그런 우려가 깔려있었다고 추측했었다. 나는 민중의 의식이 쿠데타를 용인하기에는 너무 성숙했다는 사실을 군대가 잘 알리라고 일축했다. 예전엔 군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올케언니 아버지가 삼성장군이었고 가까운 친척 중에 별이 많지만 군사반란을 일으켜 기득권을 살리면서 독재를 일삼던 군인들, ‘광주사태’ 때 국민을 학살하는 병기로 돌변했던 그 군인들은 시간이 흘러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게 군인에게 부드러운 눈과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한 분이 계시다. 의정부교구 이기헌 주교님이시다. 군종신부 출신이면서도 사회정의에 앞장서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 않는, 행동하는 지성인 성직자를 보며 우리나라에 제3세계식 야만적인 군사반란은 더 이상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보스코가 독일가문비나무로 올라가 매해 화려하게 꽃피는 능소화를 잘라내겠다더니 생각을 바꿔 이번에는 정자 옆 가문비나무에도 능소화를 올리겠단다. 그런데 가지가 너무 굵고 뻣뻣해서 중간이 끊기었다. 어쩔까 생각하다가 문상마을 산보 길에 붉은흙 나오는 곳에서 흙을 좀 퍼다가 물에 개어 끊어진 상처에 바르고 싸매주자고 했다. 산길네서 꽃도 꺾었다. 구절초는 벌써 끝났고 쑥부쟁이와 산국을 한아름 꺾어왔다.


산보 길에 서리거지로 딴 설익은 호박을 가져다 인규씨네 외양간에서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앞산을 바라보는 소들에게 썰어 한 입씩 나눠주었다. 옆칸에 혼자 있던 새끼 밴 암소에겐 두 배로 주었다, 엄마니까.



며칠 전 엄마 방에서 TV를 보는데 60대 후반의 아줌마가 막대 아들과 정형외과에 간 장면이 나왔다. 의사선생님은 세 장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무릎의 연골은 다 닳아지고 휘어 있어 걸을 수 없고”, “어깨 인대는 늘어날 대로 늘어나 뭘 들 수가 없고”, “허리뼈들은 연골이 다 삐져나왔고, 인대는 끊어져 있다”고 진찰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그런 몸으로 농사를 지어 왔다! 그런 몸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기적이라는 의사의 말. 


막내아들은 엄마가 아프다시면 “엄마는 늘 아픈가 보다” 했는데 자기가 너무 무심했다며 운다. 정말 엄마니까, 엄마만 저런 몸으로 농사일이나 가사를 해낼 수 있다. 엄마는 역시 위대하다. 그 프로를 보면서 울 엄마가 고마워 꼭 안아 드렸더니 “싱겁기는!” 하시면서도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가 나도 좋다.



여름철엔 이종철 신부님이 계셔 주일미사를 해주셨기에 오늘은 3개월만에 본당신부님이 주일미사를 집전하러 오셨다. 3개월 전에 새로 오신 두 분 수녀님도 처음 뵙는다.


미사 후에 다과를 드는데 부인네들의 식탁에서도 ‘박근혜 퇴진’ 데모에 함께했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밀라 아줌마는 우리가 말도 하기 전에 “난 박근혜 안 찍었어!” 하신다. 맞다. 선거하러 가던 날 당신은 박근혜 안 찍을 꺼라 해서 내가 까닭을 물으니 아들네들이 절대 찍지 말라고 하더란다. 그럼 누가 박근혜를 찍은 거야? 개표 조작이 맞는 말이었어? 



그런데도 오늘 검찰 발표에, 충실히 정권에 ‘개검’으로 처신해온 검찰의 발표임에도 “내 배 째라! 그게 무슨 죄냐? 헌재 가서 보자!”라는 배짱이라니!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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