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맑음
20일 간의 서울 나들이에 집에 남겨질 생물들이 맘을 바쁘게 한다. 눈을 뜨자마자 겨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꽃들에게 동거인으로서 책임을 다한다. 물을 듬뿍 주고 햇볕 쪽으로 고개를 길게 내밀었던 가느다란 가지들은 방향을 돌려 몸을 바로 세우게 했다. 그러고도 놓고 가는 게 안타까워 생물이 사람의 발목을 잡듯 우리도 그것들에게 많은 위안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잘 있어. 기다리고 있어, 다녀올게” 그래서 법정 스님이 난초 한 분을 키우면서도 애착에 대해서 그리 깊은 생각을 하신 듯하다.
지난 여름 아래 텃밭에 닭장을 짓고 닭을 꼭 열 마리만 키워 계란을 받아먹고 여름에 손님이 오면 부엌 곁에다 가마솥을 걸고 산에서 주워온 나무를 때서 옻닭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보스코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텃밭 채소만으로도 전순란 걱정거리는 충분하다고,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강아지 한 마리 제대로 키운 적 없는데도 까닭이 있다.
옛날 우리 엄마는 그 많은 닭을 어찌 키우셨을까? 하기야 호천이가 개구리를 잡아오고, 우리는 채소 잎을 모으고 풀을 뜯어다 넣어주고, 쌀겨를 물에다 개어 한쪽에 밀어 넣어 쪼아 먹게 했으니 우선 일손이 될 애들을 많이 낳아야 했다. 최소한 다섯은 낳아야 꾀를 피우는 나 같은 애 하나를 빼고도 양계장 둥지엔 맨날 따끈한 계란이 있었고, 그것을 가져다 날로 먹을 수 있다. 애 다섯을 못 낳은 죄인이라서 휴천재에서 닭 키우는 꿈은 접어야 했다.
10시 30분 함양성당 미사에 갔다. 신부님이 너그러우니 모든 사람의 얼굴이 평온하다. 신부님은 강론으로 내년도 ‘함양성당 사목지침’을 말씀하셨다. 첫째 기도와 성사 생활을 잘하라고, 옛날엔 주일미사에 빠지면 신부님이 노인도 회초리로 때렸다고 하신다. 나이 상관없이 교우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열정이 있던 신부와, 그 신부의 사목 활동에 종아리를 걷었을 교우들의 시절, 말씀을 하늘처럼 받들던 ‘텬주교 전성시대’가 신화처럼 들렸다. 성탄이 되면 판공을 꼭 보라시며 죄의 고백과 용서는 죽은 뒤에 받을 심판을 가볍게 해줄 거란다. ‘사는 게 죄’일 따름이라고 생각하는 할머니들을 앞에 앉혀놓고서…
두번째, 전교! 좋은 소식을 듣고 전달하지 않은 교우들은 우편배달부가 편지 전달을 안 하는 배달사고란다. 이탈리아 TV에서 우편배달이 귀찮아 땅에 편지를 묻어 버렸다던 우체부가 생각난다. 우리 동네 임실댁이 예비자교리에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오늘 성당에서 인사를 한다. 보스코의 배려로 남편 부면장님이 병원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가셨다. 세번째는 봉사활동을 하라는데 M.E.활동이나 레지오 활동, 연도 등의 신심활동을 가리키는 말이어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넓은 의미의 봉사활동도 언급하셨더라면 좋았을것을…
네 번째 ‘친교!’를 말하며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으니 행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라!’고, 행복이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니, 좋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라고, 성삼위께서도 혼자는 심심해서, 고도리를 치려 해도 셋은 필요해서 삼위로 계신다며 우리를 웃음짓게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회칙 「사랑의 기쁨」에서 삼위일체의 비유에 금기로 통하던,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라는 가족을 예로 드신 일이 생각난다.
12시에 샤브향에서 추위를 피해 산청으로 내려오신 이종철 신부님, 내일 마산 월남동 성당에서 강연이 있는 누이 분매수녀님, 그리고 만나기만 해도 내가 행복한 남해의 형부와 언니랑 만나서 점심을 먹고 다음 코스인 콩꼬물에서 옵션으로 눈꽃 빙수를 먹었다.
저 오누이간은 마주 보기만 해도 서로에게 우애가 넘치는 가족으로 느릿한 말과 어눌하고 어수룩함이 매력인 신부님, 웃음소리가 ‘까르르’ 천장을 울리는 언니, 막내로 영특하고 당찬 수녀님은 오빠의 절대적인 신뢰로 모든 일을 끝내주게 처리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부의 매력이 이 팀을 부조화의 조화로 만들어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그분들을 만나고 유무상통 계신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보스코와 나는 까닭없이 실실 웃는다.
주말 귀경길에 길이 많이 막혀 6시가 다 되어서야 엄마가 식사하시던 식탁에 도착하였다. 좀 전까지도 같이 있었다는 듯이 전혀 놀라움 없이 전혀 소란스럽지 않게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 이모는 조용히 물컵을 우리에게 밀어준다. 깊은 바닷속 물고기들처럼 노인들의 소리 없는 움직임, 그 위로 6시 삼종기도를 알리는 큰북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