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성탄절’, 맑음
아침에 일어나 성탄나무 밑에 놓인 선물을 챙기는 시아와 시우! 어제 내 놓은 ‘고수레’ 과자를 산타할아버지가 잡숫고 캔커피를 마시고 가셨나보다 일러주니까 부지런히 포장지를 벗기던 두 꼬마, 선물이 썩 흡족하지 않았던지 나를 올려다보며 “할머니 그런데 그거 알아요? 사실 산타는 없는 거?”라는 시아. “아빠가 열 살에 내 질문에 사실을 말해주셨어요.” 그 말에 자기도 이젠 알만한 건 다 안다는 듯 시우가 거든다. “함무이, 4학년 안나엘한테 들었어요. 걔가 크리스마스트리 있는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산타 대신 자기 아빠가 찍혔대요. 학교에서 얘기해 주었어요.”
성탄날 아침풍경
산타고 선물이고 다 어른들의 짓이라고 신나게 떠벌리는 동생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시아가 “그런데 시우야, 그렇게 신날 건 없어! 난 이제 망했어. 12월 24일에는 생일 선물 받고 25일에는 산타 선물을 받았는데 이젠 그것도 끝이야!”
선물이 하나밖에 없는 ‘초라한 성탄’을 걱정할 만큼 하루아침에 늙어버린 두 꼬마를 보는 나는 우습기도 하고, 자라면서 동화를 놓치고 ‘사실’이나 ‘진실’을 직면하는 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안쓰러웠다. 자칫 블루크리스마스 아침이 될 뻔했다.
시우 건 형아가 조립해주는데...
형아 건 손을 못 대게 하다니...
성탄날 아침기도: 주모경에 ‘기도지향’ 보태기
그러나 역시 애들이라 즉시 잊고 둘이서 토닥거린다. “형아, 형아도 내 것 갖고 노는데 나도 형아 꺼 조립하게 해 줘. 나는 레고가 없잖아!” “없는 게 당연하지, 이건 내 생일선물이야!” 작년에만 해도 막무가내 울고 떼를 쓰던 시우가 이젠 꼬리를 내리고 “그러게 조립한 거 조금만 만져보자고...” 시아는 레고사람 하나를 동생에게 밀어주더니 돌아앉아 장난감 조립을 계속한다. 물끄러미 형을 바라보는 시우에게 “시우야, 이건 열 살 이상이 하는 거라 조립이 힘들어. 다 만들고서 갖고 놀게 해 줄게.” “응, 형아, 고마워.”
10시가 넘어서 잠을 깬 빵기가 올라와 애들 옆에서 하품을 계속한다. 보다 못한 시아, “아빠, 졸려요?” “응, 시차적응이 안돼서....” “무슨 걱정이세요? 한 20일 참으세요. 그럼, 제네바로 돌아가서 바로 시차적응이 될 꺼 아녜요?” 기막힌 논리다. 저렇게 형제간에도 부모와도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쟤들은 참 잘 살고 있구나’ 싶어 보기만도 흐뭇하다. (이런! 손주 자랑을 멈출 수가 않네, 돈 내고라도 할 테니 청구서들 보내시기를...)
점심은 시아와 보스코의 주문대로 며느리랑 파스타와 닭고기와 감자를 마련했다. 엽이네가 사온 케이크를 잘라 시아의 어제생일과 예수님의 오늘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경복궁 구경가기로 한 계획은 점심이 너무 늦어 포기하고, 엄마 아빠 형아가 노원의 서점을 찾아가는데도 시우는 집에 남아서 엽이와 약혼녀, 엽이아빠가 나와 함께 다과를 하는 자리에 끼어 앉아 조잘조잘 호스트 역할을 얼마나 잘하는지 엽이아빠에게서 만원을 선물 받았다. “할아버지, 만 프랑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넙죽 받는 시아! 정말, 제 삼촌(빵고)어렸을 적의 ‘조잘이’ 그대로다!
정옥씨가 많이도 긴장을 했었던지 오늘도 기운을 못 차린다.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하고 링거를 맞게 하였다. 처음 상견례를 하러 나온 사돈네도 난감했을 테고, 남편은 덩달아 어쩔 줄 모르고, 모처럼 결혼 전 크리스마스이브의 낭만을 반납한 약혼자들은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을 놓쳤다.
어지간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이 모두 자기 탓이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본인이야말로 제일 답답할 게다. 함양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걱정해 엽이아빠는 해거름에 버스타러 나갔고, 병상에 누워서 내일 출근하는 아들의 등을 지켜봐야 할 그니가 참 딱하다. ‘아내’와 ‘엄마’는 절대 아파서들 안 되는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