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로 박근혜 정부의 공작정치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청와대 공작정치 사례를 통해 본 국정농단,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고 현 정부의 사찰‧공작정치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박근혜 정부 3대 민정수석이었던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은 김 전 수석이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지시받았던 내용을 120쪽 분량으로 빼곡히 기록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행정의 전형이며,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의 범죄에 속하는 것을 국정 사령탑인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김남근 변호사(민변 부회장)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사찰이나 공작 정치의 형태는 독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비정상적인 행정의 전형이며,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의 범죄에 속하는 것을 국정 사령탑인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개인과 집단에 대한 탄압을 조직적으로 기획했고, 일사불란하게 이를 실행에 옮겼다.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해고하도록 지시했고, 관계된 언론을 탄압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으며, 법무부와 검찰을 통한 행정보복으로 민변 변호사들을 괴롭혔다.
김 변호사는 청와대가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를 사찰해 통제되지 않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사생활과 비리를 통해 길들이기를 시도했고, 이렇게 길든 법무부와 검찰 등을 동원해 정권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탄압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국정원과 경찰에게 직접 사찰하도록 지시 내린 김기춘 전 실장 등을 국정원법 위반에 대한 교사죄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작정치를 없애기 위해 행정조직 내에 만연한 충성문화를 타파하고, 행정기관 및 부서간의 건전한 견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작정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헌법 원리인 민주공화국과 삼권분립, 법치 행정의 원리를 훼손하는 것이며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등의 범죄행위”라며 “경찰의 지방자치화를 전제로 검사장 직선제 등 검찰 고위간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색깔론’ ‘비난여론 조성’으로 세월호 죽이기 지시
이어 언론계, 문화예술계, 전교조, 통합진보당 해산,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한 정치공작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토론회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저지하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죽이기’ 지시과정이 자세히 소개됐다.
박근혜 정부가 참사 당시 청와대의 대처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고, 관련자들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는 현 정부가 국가 재난에 대처하는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업무일지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적혀있으며, 이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봤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증거다. ‘세월호’ 언급은 170일간의 업무일지에서 절반에 가까운 83일을 차지했다.
김진이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전 조사관은 유독 빈번하게 나오는 세월호 관련 지시들을 통해 청와대가 세월호를 얼마나 예민하게 다뤘는지 알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대부분의 지시가 정부의 책임 은폐와 축소를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2014년 7월 8일 기록에는 당시 청와대가 세월호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는 내용이 나온다.
김 전 조사관은 “이 기록들은 정부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막아 국가 책임론을 피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음을 알게 해준다”라며 “정부와 여당이 진상규명도 되지 않은 참사의 결론을 일찍 내놓았던 이유도 이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앞세워 세월호에 대한 유언비어를 유포시킨 내용,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요구에 ‘색깔론’으로 대응하라는 지시, 언론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성하려는 정황 등이 나왔다.
김 전 조사관은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를 대처해야 할 대상으로 보면서, 끊임없이 유가족들의 주장을 왜곡해왔다”며 “청와대의 지침에 따라 보수단체, 정부, 여당이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어떻게 방해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했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까지 계속 나오고 있는 참사 관련 의혹과 증언,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 등을 바탕으로 세월호 특조위를 재구성해 진상규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개혁’과 ‘재벌개혁’ 함께 이뤄야
언론 분야는 김동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발표를 맡았다. 그는 KBS 이사회 사장 임명 개입, 세계일보 정윤회 문건 등 보도 관련 지시사항, YTN 해고자 동향 파악 지시 등 업무일지에 드러난 언론통제 관련 부분을 소개하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방송법에서 보장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장지연 문화의문제들 공동좌장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검열 지시, 다이빙벨 상영 방해 및 부산국제영화제 감사,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비호 및 광주비엔날레 개입 등의 문화예술 분야 공작정치 사례를 소개하면서, 겉으로는 문화융성을 내세웠던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술의 기반을 파괴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는 사이버 검열과 종교계 사찰, 민간인 사찰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박근혜 정권이 국민의 표현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사이버 공간을 통해 손쉽게 여론을 장악하려는 노력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돼왔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제도적 장치나 개선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례발표에 이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정부의 공작정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박주민 의원은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상희 교수는 국민을 약탈의 대상으로 보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더불어 재벌개혁이 이와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