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일 일요일, 맑음
새벽 세시에 잠들어 8시에 일어났다. 미루네는 새해의 해돋이를 보려고 산청에서 남해로 한달음에 새벽길을 달려가 파스칼 형부네랑 바다를 가르고 찬란히 차오르는 희망의 붉은 태양을 한 폭 사진에 담아 보내왔다. 귀하고 반가운 선물이다. 어제의 태양과 다를 것 없고 내일의 그것과 같을지라도 우리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어제는 구랍이고 오늘은 새해라 불리며 전혀 다른 의미를 띤다. “새벽은 오직 ‘깨어 있는’ 자만이 맞는다”는 ‘한겨레’의 그림 한 장이 곤한 내 정신을 퍼뜩 깨어나게 만든다.
귀요미 미루가 남해에서 맞은 일출
하느님이 손과 말씀으로 빚어내신 고귀한 존재, 나는 올해도 그 존재에 ‘감탄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는’(대모님의 교훈)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생명도 사랑도, 만남도 음식대접도 모조리 그 ‘존재’라는 그릇에 담긴 하느님 선물이니까...... 내 인생의 화두는 늘 ‘사람’이었다. 사람 새에 살며 만나는 사람을 받들고, 하느님 모상으로 소중히 모시고 싶다. 내게 구원의 이름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은 늘 사람들 속에 계셨다.
호연이가 뭔가 신이 나서 전화를 했다. 큰 누나인 내게는 늘 살갑고 귀한 막내여서 동생이라기보다 아들에게서 느끼는 애틋함이 따스하게 배어난다. 새해 인사 뒤에 좀 머뭇거리다 자기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 “무슨 일이니? 어여, 누나한테 말해봐!” “누나, 나 장로로 피택되었어.” “??? ... !!!”
그러니까 막내가 지금 다니는 일산교회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다섯 번째로 세우신 교회요 두 분이 초대 장로로 시무하신 곳이다. 그 동안 전장로님네 큰아드님은 교회에 안 나간다. 그 대신 올케가, 비록 우이교회에서지만, 권사로서 두 사람 몫의 봉사를 한다. 둘째 아드님은 부부 모두 교회에 안 나간다. 엄마 조장로님의 ‘기도발’이 대단하지만 큰아들과 둘째아들에게는 엄마의 기도가 아직 덜 먹히나 보다.
전장로님네 두 딸은 ‘구교’ 신자가 되어 있다. 여동생은 마리아, 제랑은 요셉, 그 집 착한 아들들도 성실하게 성당을 나간다. 내가 결혼하자마자 친정아버지는 개신교 장로시면서도 “남편의 종교를 따름이 출가외인의 본분이니라”라는 유교적 가르침을 내리셨지만 내가 정작 가톨릭으로 입교한 것은 그 뒤 40여년 지난, 불과 5년전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레쵸 동굴에 구현한 성탄절 성가정
일요일인데다 정월 초하루임에도 떡국 한 그릇 먹고 열심히 일하는 특검과 헌재 사람들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하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과 전국 도회지 중심가의 차가운 길바닥에서 고생하는 국민의 고충을 빨리 끝내주려고 저러려니 믿고 싶다.
그러던 중 막내의 장로 피택은 우리 집안에 커다란 기쁨이다. 막내올케가 워낙 교회에 열심이라 시어머니 신앙을 이었다고들 했는데, 어려서부터 착하기만 하고 뚜렷한 존재감이 없던 막내에게 온 일산교회의 초빙은 우리 가족에게 참 기쁜 소식이다. “누나, 갈 길이 아직 멀어. 우선 장로 시험도 봐야하고” “시험이라면 너 안 되잖아? 누나가 대리시험 봐줄까? 신학대학 나온데다 ‘시험’하면 이 큰 누나잖니?” “와, 그럼 내가 정유라 되고 누나가 류철균 되네” 새해 첫날 한바탕 웃었다.
막내는 큰손주 시우처럼 다리가 가늘고 작달막하고 귀여운 소년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내가 시집올 적에 초딩 1학년). 내 처녀시절 한번은 누나가 크림빵 사오라고 심부름시키더니 빵 속의 크림은 누나가 다 빼먹고 껍질만 주더라며 막내는 지금도 원망이다. “호연아, 크림빵 열개 사줄 께 그 얘기 좀 잊어주라” 애걸해도 절대 그때의 억울함을 크림빵 열 개로 안 바꾼다는 동생이 드디어 독실한 장로님으로 내 앞에 섰다.
오후에 박근혜가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신년 인사회를 한다 해서 사람이 끝날 때면 뭔가 바뀐다더니 ‘설마?’ 했는데 과연 ‘역시나!’였다. 간담회에 들어가는 모든 기자들에게 스마트폰 노트북 녹음기구 카메라 지참을 금지시키고, 사진도 (주사기바늘자국 안 나오게) 자기가 찍은 것만 나눠주고, “나는 세상 모르고 죄없고 억울하고 불쌍한 소녀가장이에요”라는 독백이 전부였다니...... 새해 정유년(丁酉年)에서 정(丁)은 붉은 색이라니 국민은 붉은 닭을 잡는 운세라는 말인가? (하지만 박근혜 땜에 ‘역시 여잔 안 돼!’하는 편견을 품는 이들은 김영란 대법관의 경향신문 인터뷰를 일독하시기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11622001&code=940100)
우리 국민을 동정어린 인간과 권력에 주린 아귀로 갈라놓은 한 사건
박근혜 일당은 저 화염에 타죽어가면서도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일요일인데다 정월 초하루임에도 떡국 한 그릇 먹고 열심히 일하는 특검과 헌재 사람들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하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과 전국 도회지 중심가의 차가운 길바닥에서 고생하는 국민의 고충을 빨리 끝내주려고 저러려니 믿고 싶다.
성가정축일 미사여서 완성연립에 사는 모범택시기사 부부가 ‘성가정모범상’을 받았다
‘천주의 모친 성마리아 대축일’을 모처럼 11시 미사(우리는 보통 어린이 미사에 간다)로 지내고 돌아와 떡국을 끓여 보스코와 둘이서 점심을 먹었다. 사돈어른께 보스코가 신년인사 나누는 전화를 드렸는데 수화기에서는 일곱 손주를 한꺼번에 거느리시느라 어지간히 분주하신 분위기더란다.
5년전(2011) 시우가 세례받던 날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