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해 강제 종료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잇는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이하 국민조사위)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특조위 1기’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기구였다면, 국민조사위는 세월호참사 피해자 유가족과 국민이 중심이 돼 활동하는 민간 차원의 기구다.
특조위가 강제 해산된 후 야당은 지난해 말부터 특조위의 활동 기간 보장과 조사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현재까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회 법안 처리와 조직구성을 생각한다면 2기 특조위는 빠르면 연말이나 돼서야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참사의 진상규명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인 선체인양 과정 동안 조사가 멈추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특조위 해산을 주장할 때부터 이에 대한 우려와 고민은 예상됐었다. 국민조사위는 이러한 고민에서 태어난 기구다.
창립총회에 앞서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세월호 참사와 탄핵’을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특조위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 과제를 마치지 못한 점이 죄송하다”며 “정부가 4월에는 세월호를 인양한다고 하는데, 선체가 인양될 무렵부터는 새로운 특조위가 제대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바다 들어가도 공무원들은 보고서만 관심”
이날 토론회는 김선애 특조위 전 조사관이 ‘세월호 참사에서 청와대 등 기관별 대응과 그 적정성’을 주제로 발제했고, 박영대 국민조사위 준비위원은 ‘대통령 7시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정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국민생명권 등의 침해와 탄핵’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김선애 특조위 전 조사관은 승객들이 사고 직후 정부에게 배의 상태와 자신들의 상황을 신속하게 전달했고 선내에서 질서를 유지하며 끝까지 국가를 신뢰했지만, 청와대를 비롯한 재난대응기관은 무능과 무책임으로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사 당시 정부는 집행이 없는 행정만 했다. 세월호가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행정부 관료들은 보고서 작성과 대책회의, 공문서 작성 등으로 분주했다”라며 “그러나 침수 중인 세월호의 기울기, 기우는 속도, 선내 잔류 승객 등 승객구조를 위한 핵심적인 정보들은 정부와 해경과의 통신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김 전 조사관은 참사 당시 정부 기관이 보고서 작성을 위한 승객의 수와 현장 상황 등을 확인할 뿐, 실질적으로 승객 구조에 필요한 지침을 내리거나 구조와 관련된 내용을 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세월호 참사가 갑자기 일어나서거나 배의 침몰속도가 갑자기 빨라져서가 아니라, 수많은 대형 참사 앞에서 정부가 관성처럼 해오던 방식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도 각 행정부처는 정해진 규칙대로 각자의 업무를 했었다고 강변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7시간, 핵심 흐려서는 안 돼"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안 구했다’는 것이고, 진상규명의 핵심은 ‘왜 안 구했는가’
박영대 국민조사위 준비위원은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청와대가 제시한 자료들을 비교하며, 서로 간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의 7시간’이란 질문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참사 당시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참사와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박 위원은 “‘7시간’이란 용어를 사용한 순간, 대통령에게 10시에 최초 보고됐다는 청와대의 주장을 국민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월호는 10시를 즈음해 급격히 침몰했고, 10시 30분에는 선수만 남기고 물속에 잠겼다. 청와대의 주장에는 ‘대통령이 최초로 보고받은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가 침몰했기 때문에 손쓸 시간이 없었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8시 52분 단원고 학생의 신고 이후 해경 초계기와 헬기 등이 사고지점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참사 발생의 원인을 넘겨짚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7시간’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스캔들에로의 몰입’이 일어난다. 대통령이 주사를 맞았나 안 맞았나, 연애를 했나 안 했나, 머리를 올렸나 내렸나 등은 세월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데, 여기에 몰입하게 한다”라며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안 구했다’는 것이고, 진상규명의 핵심은 ‘왜 안 구했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생명권 방치한 대통령, 명백한 탄핵 사유”
이정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TF팀장 변호사는 “국가의 원수로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을 수반으로 하는 대통령의 직무는 사실상 24시간 계속되는 것”이라며 “특히 국가재난 상황에서 국가 위기관리기본지침에 따르면 이는 더욱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청와대가 참사 당시 사고내용을 언론과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던 점을 짚으며 ▲대통령은 각부의 권한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헌법은 이를 통해 국민 모두에 대한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무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과 국가안보실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과 위기관리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재난 분야 위기에 관한 업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경우는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대통령이 헌법수호 의무와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과 이에 따른 위기관리매뉴얼에 따른 국가위기 발생 시 대응은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해경본청상황실로부터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고 신고’ 된 상황에서 위기관리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고, 결국 304명의 생명권을 침해했다. 이는 중대하고 명백한 헌법 위반이기 때문에 탄핵당해야 하는 것”이라며 발제를 마쳤다.
이어진 토론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특검은 대통령의 재난대응 적절성 여부를 형사재판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했는지로 몰아가면 끝도 없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라며 “탄핵심판은 엄격한 형사재판이 아니라 대통령이 헌법상의 의무를 위반했는지를 심사해 그 직무수행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신년에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세월호 참사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를 물었다. 119의 구조 도움을 거부한 것이 해경인데도 ‘119도 있었는데’라고 말했다”라며 “대통령은 탄핵이 된 지금도 상황파악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이런 것을 봤을 때 참사 당시 대통령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 자명하다. 그러면서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방해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분명한 탄핵 사유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무엇 때문에 탄핵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탄핵 이후 개혁과제가 명확할 수 있다”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1월이든 2월이든 조기에 특조위가 준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조사위 준비위원회는 이날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적정성과 헌법 침해 여부에 대한 법률의견서를 세월호 참사 1,000일째인 9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론회 이후에는 국민조사위 창립총회가 이어졌다. 총회에서는 국민조사위 설립 경과보고와 규약 제정, 임원선출과 1/4분기 사업계획 심의 등이 이뤄졌다. 조사위는 이날 창립선언문을 발표하며 김서중 민교협 상임공동의장을 비롯해 10여 명의 조사위 공동대표단과 152명의 시민위원 이름을 밝혔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제2 특조위가 구성될 때까지 진상규명은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한다”라며 “국민조사위원회는 지금까지 특조위가 밝혀낸 정보를 정리하고 널리 알려, 진상규명을 지속하는 시민참여를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국민조사위는 4·16가족협의회 산하 기구이지만, 독립활동기구로 운영된다. 조사위는 7일 오후 5시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주제로 열릴 11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시민연구원 참여는 이날 공개되는 국민조사위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직접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