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7일 토요일, 흐림
주님 공현 대축일 토요미사를 다녀왔다
빵기가 대구에 계신 지선이 할머니, 그러니까 ‘왕할머니’를 뵈러 간다고 꼬마들과 사부인까지 함께 대구행 KTX를 탔단다. 처음엔 생전 첨으로 기차를 탔다고 신나하던 꼬마들이 한 20분 지나자 지루하다고 몸살을 한단다. 청룡열차도 아니고, 오르락내리락 스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자리에서 서로 비비고 엉키지도 못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빵기나 지선이가 한국에 나올 때 마다 꼭 어른들을 찾아뵙는 건 참 기특한 일이다.
엘리사벳이 신년인사를 오겠다더니 내가 식사 준비를 안 하도록 방학동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지난 번 못 본, 김선생도 왔다. 바오로씨는 감옥에서 필사로 성서공부도 하고 레지오 활동도 했단다. “할 게 공부 밖에 없고 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어 감옥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크게 되었다”니까 ‘옥중신심(獄中信心)’이랄까?
조폭이나 잡범들도 소위 공안사범들을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자기네와 다른 사람으로 모시며 존경을 표한단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던, 갈바리아 형장에서 예수님이 강도에게서 듣던 고백을 말없이 표한단다. 자기 죄상을 알고 있고, 정의를 위하다 투옥된 사람들이 무죄함을 아는 저 사람들의 양심에 비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사자들의 철면피한 얼굴과 당당한 거짓말은 돈과 권력이 어떻게 인간 양심에 화인(火印)을 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김선생은 간수들의 부탁으로, ‘지도위원’이 되어 문제가 있는 수감자와 마음을 나누고 깊이 있는 대화로 인생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돕기도 했단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더라도, 인간을 어느 곳에 가둬 놓아도,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으로부터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는 자유인이다! 신선생님이 출옥하신 뒤 우리 집 가까이 사셔서 한번은 부부를 모셔 식사를 하는데 그 오랜 투옥에도 ‘자유인’의 기상이 서려 있던 기억이 선하다.
정말 인간이란 하나의 심연(深淵)이다. 저런 모습에서 놀라운 심연을 보고 우리가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 지나쳐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낼모레 ‘세월호 1000일’을 두고 오늘 밤에도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였다. 어제 서석구씨가 광화문집회를 두고 모든 말마디에 ‘이석기’를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박근혜를 찍었거나 지금도 동정하는 보수집단 생각이 딱 저럴 거고, 그렇다면 보수는 반공병에 걸린 정신병자 집단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전 국민에게 주고 말았다.
광화문 등지에서 하는 이석기 의원 석방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하는데, 우리 예상과는 반대로, 젊은이 보다 50대 후반의 호응이 더 많아 본인들도 놀랐단다. 꽁꽁 언 겨울 강에 바늘 끝 하나로 실금이 ‘짝!’ 소리를 내면서 한꺼번에 깨지는 얼음장. 막강한 권력이 어이없이, 아주 하찮은 이유로 무너져 버리는 일을 총 한방으로 무너진 유신정권, jtbc 태블릿피시 보도 하나로 무너진 박근혜 정권에서 우리는 보았다.
엘리사벳씨와 조선생은 우리 집에 와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요즘 생활을 얘기한다. 첫째, ‘엥겔계수’가 높아졌단다. 그 말은, 남편이 없을 때 혼자 남은 아내는 밥도 안 해 먹으며 끼니를 떼웠다는 얘기고, 이 겨울 지난 3년보다 부엌일이 확 늘었어도 차가운 감옥에 사랑하는 이를 홀로 두기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다. 남편 조요셉씨는 요셉 성인의 본업인 ‘목수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기초생활 수급자보다는 좀 더 나은 생활을 유지하노라면서 그나마 다행이란다. 박근혜-최순실이 이쪽저쪽으로 못 된 짓이란 짓은 골고루 안 한 게 없다.
우리 동네 꼬방동네의 밤 풍경
오후 네 시에는 함양 임회장님 작은딸이 아폴로처럼 멋지고 훤칠한 하동 총각과 함께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인사를 왔다. 보스코가 주례자로서 요구한 ‘혼인관계증명서’를 미처 못 가져와 우리 집 컴퓨터로 다운받아 프린트 했다. 요즘 애들 생각엔 번거롭다고 했겠지만, 보스코는 자기가 주례를 해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신랑에게 부인이 있었다든가 신부가 남편 있는 몸으로 아직 이혼도 안한 여자였다는 등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의미란다. 청첩장에 이수동의 시 ‘동행’을 실어놓은 깜찍한 한 쌍이다.
꽃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10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