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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늘나라 가셔서 네 아들을 키우신 어머님
  • 전순란
  • 등록 2017-02-01 12:39:31
  • 수정 2017-02-01 12: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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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1일 화요일, 맑음


보스코의 영명 축일이다. 오늘 복음서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자 얘기가 나온다.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괴로웠을까? ‘저 분이라면 저분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나을 것 같다’는 간절함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 간절한 믿음이 그녀를 살렸다.


보스코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어느 식당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허드렛일로 홀로 네 아이를 키우셨다. 서석국민학교를 다니던 큰아들 보스코가 공부를 잘 해서 그 아들 하나에게 희망을 걸고 계셨으리라. 어느 날 공터에서 놀다 주운 전단지에서 ‘사레지오중학교’ 광고를 보았단다. 깨끗한 학교 건물과 수세식화장실이 인상적이더란다. 전단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며 “엄마, 나 이 학교 갈까봐요!”했더란다. 


돈보스코 성인이 내 남편 보스코와 형제들에게 베푸신 바는 가이없다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아까운 수재가 새로 생긴 학교에 가느니 서중학교에 가라시면서 원서까지 사다 모든 절차를 밟아주셨단다. 그런데 서중학교 입학시험에서는 담임선생님이 기대하시던 수석을 못 했단다. 차석에게는 3년 장학금을 안 준다는데 아예 입학금 낼 돈도 없었단다. 어머니는 집안의 기둥인 아들이 후기 중학교라도 수석입학을 하면 학교를 다닐 수 있겠지 싶어 사레지오중학교 진학을 허락하셨단다. 과연 수석입학을 했고 그때부터 보스코와 아우들의 인생이 바뀐다.


사레지오중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끼니를 거르기 일쑤여서 공부가 많이 힘들었단다. 엄마가 일하던 식당집 주인 아들에게 과외를 하던 광주고등학교 학생(이름이 김영수)이 부엌아주머니의 딱한 사정과 아주머니 아들의 공부 얘기를 듣고 사레지오중학교 교장님을 찾아갔단다. 그 당시 고3은 그렇게나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군복무 후 독일로 유학갔고 캐나다로 이민갔다는 그분을 보스코가 찾고 찾았지만 소식이 없다).


“수석입학을 하여 들어온 학생이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밥도 못 먹고 다니니 학교기숙사에 받아주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단다. 그 학교에는 광주교구 ‘소신학교’를 겸하는 기숙사가 있었다. 교장 마르텔리 신부님은 당돌한 고등학생의 간절한 호소에 감격하여 보스코를 기숙사에 무료장학생으로 받아주셨다. 하루 세 끼 따뜻한 밥을 먹고 편히 자고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고아원에 남겨진 동생들이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차례차례 사레지오중학교와 기숙사에 받아들여져 먹고 자고 공부하는(죄다 공짜로!) 섭리가 이어진다.


공직생활 중 살레시오 장상들을 초청하여 공식으로 감사를 드리던 보스코


그때부터 돈보스코 성인과의 섭리적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난한 여인이 네 아들을 두고 임종하던 신음은 오늘 복음서에 나온 여인의 간절함보다 훨씬 애절했으리라. 중학교 1학년짜리 큰아들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숨지던 여인의 기도! 그 기도를 하느님은 들어주셨다. 지금도 보스코가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저희 홀어머님은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에서 하느님 손으로 저희 사형제를 키우셨답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말마디에 나도 깊이 공감하다. 하느님께서 6.25 전란후의 한국에 온 살레시안 신부님들 손으로 그 네 고아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르치시고 사람(대학교수, 번역작가, 교장선생 등)을 만드셨으니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줄거리 그대로다.


우리 빵고가 살레시안이 되고 사제가 된 것도 아버지와 삼촌들을 교육시켜 준 수도회 은혜에 감사드리는 응답 같아서 참 고맙다. 성요한보스코 성인축일 다음날인 내일이 바로 빵고의 생일이니 오늘 축일과 묘한 연결고리가 보인다.


빵고의 서품 사진


보스코의 영명축일이라고 많은 분들이 전화로, 이메일로, 카톡으로 축하를 해주셨다. 내 남편이 이렇게 많은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에게 사랑받는지 새삼스럽다. 특히 바쁜 중에 우리 귀요미 미루가 먼 길에서 달려와 축하의 점심을 챙겼다. 군복무를 마치고 4학년으로 복학하는 막둥이도 챙겨야 했는데도 틈을 낸 것으로 보아 미루의 크나큰 오지랖은 조선 땅 반만하다.


2시에는 한국염 목사랑 수유 메가박스에서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우리 둘은 ‘더킹’을 보고 보스코는 만화영화 ‘모아나’를 보기로 했는데 상영시간이 안 맞아 함께 ‘더킹’을 보았다. 요즘 잘나가다 X된 정치검찰 얘기라서 뻔했지만 제발 저런 얘기는 영화에서만 나왔으면 좋으련만 현실이 영화보다 더 소설 같으니 이 나라가 어떤 꼴인지 알 만하다.


미국은 미국대로 히틀러 같은 광인을 뽑아놓고 난리를 치르고 있다. 전세계를 가장 처참하게 해치는 나라가 스스로 트럼프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날이 멀지 않았다. 누구 말대로 트럼프 덕분에 아메리카에 이민자가 싹 사라져 원주민 인디언만 평화롭게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 왜 다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난리일까?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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