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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안중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 최진
  • 등록 2017-02-14 13:22:51
  • 수정 2017-02-14 1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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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처럼` 등 노래에 맞춰 율동 중인 성희연 청년위원장과 청년 안중근들 ⓒ 최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1년을 규탄하는 대학생 대자보 ‘안녕하지 못합니다’를 시작으로 언론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성희연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청년위원장은 스스로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으로 표현했다. 


당시 대학생 대표발언 등을 맡았던 성 위원장은 이후 자신의 진로를 청년 활동가로 정했다. 그는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그 때 학생회장에 나가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라고 푸념을 하십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청년위원장이란 직함답게 자신의 과거를 씩씩하게 소개했다. 


동아리 활동을 알아보다가 총학생회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2013년 여름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집회가 매주 열렸는데, 학생회 선후배들과 매주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현장인’이 됐습니다.


무엇 때문에 집회에 매주 나갔느냐는 질문에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성 위원장이다.


“이전에는 그냥 일반 시민”이었던 성 위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현장에 나가면서부터 국내에 숨어있는 여러 부조리한 것들을 보게 됐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대학생 대자보와 대학교 등록금 문제, 세월호참사 대학생 거리행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행동, 주피터 프로젝트 국내도입 반대 집회 등에서 끊임없이 대학생과 청년의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전했다.


▲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규탄 시위에서 발언 중인 성희연 청년위원장 (사진제공=성희연 청년위원장)


그는 대학생 시절을 ‘정말 이상한 우리나라’에 대한 고민으로 보냈다. 거리에서 역사와 인권, 교육과 국방 등 총체적 난국의 현실을 깨달은 대학생은 ‘이상한’ 나라의 변화를 위해 곳곳에서 목소리를 냈다.   


그에게는 현장의 정신적 스승이 있다. 총학생회 선배였다. 그 선배는 학교 교수에게서 “여러분은 이화여대생이란 것만으로도 이미 특권층이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성 위원장에게는 “우리는 나중에 사회에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회에 반드시 기여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 위원장은 그 배움을 실천 하고 있다.


그는 여느 활동가처럼 7~80년대에 활발했던 학생운동을 동경했다. 그는 “가끔 집회에서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고맙다, 장하다’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대학생·청년들이 국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지금 청년들에게도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학생운동이 해외에서도 유명하다는 바다건너 소식도 알려줬다. 


수많은 청년문제, 왜 역사인가?


▲ 국정교과서 폐기 촉구 1인 시위 중인 성희연 청년위원장 (사진제공=성희연 청년위원장)


2015년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이 발표되면서 논란이 일자, 청년들은 교육부의 행정예고 전날인 10월 11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긴급농성을 진행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청년들은 길바닥에서 가을을 맞으며 노숙투쟁을 했지만, 정부는 억척스럽게도 12일 국정화교과서 집행을 선포했다. 


너무 화가 나서 대학생들과 이순신 동상에 올라 구호를 외쳤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동상이 꽤 높더라고요. 그 때는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쑥 올랐던 것 같은데, 어떻게 올라갔는지 지금은 신기합니다.

그가 ‘쑥’ 올랐다던 거북선 모형이 있는 기둥은 약 2m의 높이다. 이순신 동상을 볼 때마다 그날의 놀라운 도약이 기억되리라. 


역사가 뒤틀리는 현장은 한 청년에게 의무감을 부여했다. “제가 역사문제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해야 하니까’입니다. 청년과 관련된 여러 심각한 문제를 접했지만, 역사와 관련된 청년활동가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이 분야에서 활동한 기간이 짧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점이 저를 더욱 역사에 집중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현대사를 배우면서 의무감은 더욱 짙어졌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사실은 시간으로 유야무야될 일이 아니라고 짚었다.  


“뉴스타파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친일과 망각’이라는 다큐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에서 활동하셨던 한 변호사는 반민특위 세대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후손들이 이 고생을 한다며 원망했습니다. 환수위 분들이 고생 많으셨던 것으로 아는데, 결국 환수한 친일파재산은 목표했던 양의 일부에 그쳤습니다. 지금 우리세대도 자식세대한테 욕먹지 않으려면 지금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청년 안중근들의 한 발, 한 발이 모여…


안중근의사의 뜻과 정신을 대중적이고 젊은 감성으로 풀어내는 것이 ‘청년 안중근’의 역할과 목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의사의 독립운동 정신을 연구하고, 알리며, 실천코자 노력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 건설‧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세계평화 달성이 목표다.


그는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사일 뿐 아니라, 훌륭한 사상가라고 말했다. 저서인 ‘동양평화론’과 죽기 직전 마지막 유언으로 ‘동양평화’를 외치고 싶어 했던 일화를 통해 안중근의사가 그리던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안중근 의사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 중인 성희연 위원장. (사진제공=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그는 “전쟁의 위협이 없고 모든 국가와 국민이 평등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안중근의사가 그리던 세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중근의사는 알아갈수록 새롭고 정말 대단한 청년”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진보 역사단체서는 보기 힘든 ‘청년’이라는 단어가 단체 이름에 들어있다. 그래서 ‘청년 안중근’ 회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의미 있게 재미있게’라는 활동 사명을 수행한다. ‘역사의 의미를 재미있게 찾아가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 위원장은 “일단 활동의지가 넘치는 젊은 대학생 운영진이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에너지, 심하게 말하면 ‘똘기’가 좀 넘쳐요”라며 ‘청년 안중근’의 색을 꼽았다.


‘똘기’ 넘치는 대학생 운영진은 앞으로 안중근의사의 독립‧민주‧평화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분야는 교육과 기행, 홍보, 기념활동 등이다. 교육은 강연회나 정기 아카데미를 진행할 계획이고, 하얼빈 의거현장과 여순감옥을 방문할 청년참가단도 모집할 계획이다.


또한 안중근의사를 알리는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안중근 기자단이나 국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청년들이 직접 찾아서 탐방하는 코스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그는 “역사나 안중근의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모든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해보고 싶은 것은 매우 많아요”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매년 3월 26일 순국일과 10월 26일 의거일을 기념해 온 추모식 행사에 참여할 ‘청년대학생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있다. 다가오는 3월 26일은 안중근의사 순국 107주년이다. 


동양평화, 그리고 세계평화는 막연한 목표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청년 안중근들의 한 발, 한 발이 모인다면, 서로를 비방하던 민족과 국민이 민주와 평화로 일치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푸념했던 성 위원장. 그가 건너온 강 넘어 세상은 청년의 희망이 듬뿍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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