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신교인이 사찰 불상을 훼손한 사건에 대해 종교인으로서 대신 사과하고 불상 복원을 위해 모금 활동을 했던 손원영 교수가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통보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손원영 서울기독교대학교 교수는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돈암그리스도의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지난 17일 학교 이사회로부터 ‘성실의무 위반’이란 이유로 파면 처분을 당했다고 밝혔다.
파면의 발단이 된 ‘개운사 훼불사건’은 지난해 1월 한 개신교 신자가 경북 김천 개운사에 침입해 불상과 법구 등을 훼손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개운사는 약 1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었고, 주지 스님과 불자들은 큰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 등을 받아야 했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개운사 주지 스님과 불자들에게 종교인으로서 대신 용서를 구하는 글을 올렸고, 불당 재건을 위한 모금 운동을 진행해 1년간 100여 명으로부터 26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관련기사)
개운사 주지 스님은 이러한 성금이 불상 재건보다는 종교 간의 평화를 위한 일에 사용되길 원했다. 손 교수는 이러한 뜻을 살리기 위해 한 학술단체에 성금을 기부했고, 덕분에 지난달 11일부터 양일간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상호 이해를 위한 학술토론회가 열릴 수 있었다.
손 교수의 사과와 모금활동, 그리고 종교평화를 위한 개운사 주지 스님의 뜻이 알려지면서 교계 안팎에서는 책임 있는 종교인 자세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내재해있던 종교 갈등이 드러난 사건이 손 교수의 활동으로 바람직한 결실을 이뤘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서울기독대학교 이사회는 손 교수의 이 같은 행동이 대학 설립이념에 어긋난다며 징계위원회에 손 교수를 회부했다. 불상은 교리적으로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것인데, 손 교수가 이를 재건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여 신앙인의 정체성을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징계의결 요구 사유에서 “징계제청 대상자는 우리 대학과 그리스도의교회 정체성과 관련해 2013년부터 논쟁의 대상이 됐는데, 또다시 그리스도의교회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교회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성실성이 훼손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본교에 소속된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본교 뿌리인 그리스도의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성실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 교수는 본교 신학과 교수로서의 본분에 배치되는 말과 행동을 했으므로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이에 대해 “상식에도 어긋나는 우상숭배를 운운하며 교수를 파면하는 것은 학문의 전당이자 양심의 보고인 대학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 반헌법적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 측이 땅에 떨어진 대학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파면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신앙 정체성 등을 문제 삼은 그리스도의교회 협의회에 대해서는 파면 원인을 제공한 ‘신앙조사요구’를 공식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자신의 파면 결정이 종교에 대한 편견이나 종교 갈등으로 심화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오늘 기자회견은 나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종교가 우리 사회의 안녕과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꼭 배우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그는 학교 측이 파면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소청심사 위원회 등 법적 절차를 통해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강사를 포함해 23년간 서울기독대에서 신학 교육자로 재직했으며, 교무연구처장과 신학전문대학원장, 초대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파면 전 직위는 부교수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교회 건물 내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교회 관계자들이 장소사용을 불허하면서 교회 정문 앞 길에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