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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예수가 답이다!” “그런데, 문제가 뭐였지?”
  • 전순란
  • 등록 2017-03-03 10:40:30
  • 수정 2017-03-03 1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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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일 목요일, 맑음


어젯밤 10mm 정도의 비가 왔다. 밤에 비가 온다고 미리서 동네 아짐들이 모두 나서서 퇴비를 밭에 뿌리고, 괭이로 흙과 고루 섞어 고추대로 평평하게 다듬어 검은 비닐을 덮었다. 흙이 물을 머금고 비닐을 덮은데 해가 비치면 퇴비는 그 속에서 잘 삭아 채소의 맛난 밥이 된단다. 우선 심을 것은 감자다. 감자를 눈이 있는 쪽으로 잘라내 그 상처에 재를 묻혀 소독해주고 5cm 깊이로 심는다. ‘하지감자’니까 6월 말에 수확을 하면 8월말에는 김장배추와 무를 심어야 하니까 두어 달 놀려두고 땅을 쉬게 한다.



나도 내일쯤은 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우선 올 여름농사를 어찌할까 지금부터 고민 중이다. 농사를 못 지으면 속상하고, 잘되면 먹을 사람이 없는데… 나눠먹는데도 한계가 있고, 택배비도 만만치 않다. 300평 농사가 이러니 수천 평 수만 평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고민은 그만큼 더 깊고, 그게 생업인 사람들의 절실함은 우리가 상상할 정도를 넘어선다. 농사를 지어도 따로 판로가 없어 공판장에 가져가면 유기농이어서 때깔에서도 밀리고, 진주까지 싣고 간 기름값도 안 나올 때! 그냥 버리고 오고 싶지만 초짜 농부 귀농인에게는 그런 농작물이 모두 내 새끼 같은 애착에 눈물을 흘린다.


나도 작년 가을엔 작심하고 이웃 이장댁 밭의 무처럼, 처녀들 허벅지 같은 무를 꿈꾸었다. 그댁이 8월말에 파종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8월 초순에 함양에서는 제일 비싼 무씨를 사다가 뿌렸다. 물론 거름도 쌀겨에 여러 가지 좋은 제제를 섞은 ‘유박’이라는 유기농 퇴비까지 잔뜩 주고 패기만만하게 시작했는데…


잦은 서울 나들이로 식물에게 주인의 발걸음소리를 들려주지 못 해선지, 농약 치는 걸 차마 못하고 ‘너희 알아서 버텨 봐라!’해선지 한 달 나들이 후에 돌아와 보니 무의 속고갱이까지 벌레가 다 먹고서 뿌리로 기어들어가는 놈들 뒷다리를 잡아 겨우 끄집어냈는데… 추수하고 보니 이장댁 무의 10분의 1 정도 되는 총각김치 거리나 될까말까였다. 배추 역시 겨우 알타리김치에 섞어 문질러 넣어야 했다. 김장김치 다 떨어지면 올 하지감자 캐서 그 감자 넣은 수제비 먹을 때나 꺼내 먹을 요량이다. 욕심대로 안 되는 게 자식농사고 밭농사다.


▲ (사진출처=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요즘 보면 뜻대로 안 되는 게 나만 아니다. 우리들 아버지이신 하느님 또한 속 터지실 일이 한두 가지 아닐 게다. 오늘 온 잡지 「공동선」에 쓴, 김형태 변호사의 글이 재밌다. 저 노인들이 바보같이 혹은 아집 때문에 증오에 차서 태극기를 흔들고 다녀도 하느님은 아무 손도 쓰지 않으신다며, 김변호사 어머니께서 “저 늙은것들이 난리치는 세상을 왜 그냥 보라코만 계신다냐?”라고 원망하신단다. 하지만 헌재법정에서 박근혜를 예수님이라고 부르며 온갖 난리를 치고서 “탄핵 기각시켜 주십사!”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저 흰 눈썹 변호사의 청도 안 들어주실 테니, 하느님의 긴 호흡을 감당하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고, 그분의 신묘한 이치를 깨닫기엔 우리 욕심이 많다는 한탄이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자캐오에게 말을 건네다」(토마시 할리크)를 읽어보면, 프라하 어느 지하철역 벽에 써 놓았다던 낙서, “예수가 답이다!”와 그 옆에 “그런데, 문제가 뭐였지?”라는 낙서가 나온다. 저 태극기 집회에도 아직 주변 나무에 미쳐 못 올라간 자캐오들도 꽤 있을 듯하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을 못 만난 이들 말이다. 우리가 지금 세상을 이렇게 망가뜨려놓고서도, 망가뜨린 문제가 뭔지 조차 모르면서도, 아직도 살아남는 게 다 그분 덕택 아닌가?



바람이 꽤 찬데 점심 후 보스코가 배밭에 내려가 가지치기를 마저 한다. 과수원 농부다운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으로 뻗어난 가지, 위로 솟구치는 가지를 모조리 잘라버리는 중이다. 튼실한 새 가지들은 가운데로 굽혀서 묶어주고… 저렇게 서툰 작업에서도 배가 열린다면 그건 다 하느님 하시는 농사다. 하느님은 농부이시다, 온 세상 초목을 다 키우시고 다 꽃피우시고 다 열매 맺게 하시듯,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어젯밤 마알간 비가 산위에선 흰 눈으로 내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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