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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오늘 12일이 무슨 날이죠?” “2, 7 장날이요!”
  • 전순란
  • 등록 2017-03-13 10:09:48
  • 수정 2017-03-13 1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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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2일 일요일, 맑음


‘골롬반선교봉사회’에서 제주공항까지는 미처 3Km가 안 된다. 어제 저녁 8시까지 렌터카를 돌려주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아침에 공항에 나가는 일도 걱정을 했는데 아침 6시 45분에 원장 황 신부님이 먼저 일어나 기다리시다가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 무릎 수술로 힘든 중에도 타인을 살피는 수도자로서, 손님을 배려하는 서양신사의 자세가 몸에 스며있다.



이번에 4인승 렌터카 비용이 33,000원이었으니 하루 11,000원으로 차를 몰았다. 내 차를 배로 싣고 오는 비용만도 170,000원이라니까 렌트하는 편이 더 낫다. 제주 친구에게 렌트 비가 왜 이렇게 싸냐고 물어보니 첫째가 비수기여서, 두 번째가 젊은이들이 직장을 못 구해서란다. 집에서 차 몇 대씩 사주고 사업을 하도록 하니 회사가 너무 많아져 싼 가격에라도 차를 굴려야 한단다. 예약한 렌터카를 찾으러 간 장소도 차 몇 대 놓고 영업을 하는 젊은이들이었고, 낡은 봉고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중국 관광객으로 살아간다는 섬이지만 다들 살기가 힘들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 우리의 미래가 저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우리 어른들이, ‘있는 놈 좀 살자!’하는 정치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8시 5분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자마자 광주공항에 착륙한다는 방송을 들으니까 우리 땅이 좁기는 좁다. 이 좁은 땅에서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나름 열심히 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주권을 잃은 식민지, 분단과 전쟁, 독재와 혁명 등 실로 많은 일을 이 땅 이 겨레가 겪어 왔다니 뭉클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더구나 이번 촛불로 지켜낸 시민의 주권은 엊그제 회합에서 옥 주교님이 하셨다던 말씀을 연상시킨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라오스 집권당 인사들이 한국은 하도 수출을 잘하는 나라여서, ‘촛불혁명’도 수출할까 전전긍긍하더란다. 세계와 우리 자신까지 놀라게 한 지난 반년이 오늘 맑은 하늘처럼 선명하다.


광주에 도착하여 미사를 드리러 미사 시간을 찾다 지리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담양성당으로 가서 주일미사를 드리게 됐다. 주차장에 나와 계신 김베드로 신부님은 우리가 로마에서 최대주교님을 관저에 모셨을 때 함께 와서 식사를 한 적 있다면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본당의 인보성체회 수녀님도 함양에 계셨던 분이어서 우리 땅이 좁은 걸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신부님은 사순2주를 맞아 얼마 전까지 대신학교에서 가르치던 영성신학자답게, 특강을 하셨는데 강연 도입으로 “오늘이 12일인데 무슨 날이죠?” 묻는 신부님 질문에 “2, 7 장날이요!”라는 할머니 대답이 서슴없었다! ‘사순절’도 ‘주일’도 ‘일요일’도 아닌 그냥 장날’이었다! 신부님도 다음부터 강연 하실 때는 고민을 좀 하셔야겠다.


사순절이니 ‘사고의 전환’(=회개)이 필요하고, 우리 선행이 외교인들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강연하였다. 첫째, 하느님 당신을 모시고서 힘든 일을 함께 해내도록 은총 주십사 청하고, 두 번째,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를 위해 그 희생을 바치고, 끝으로, 타인을 향한 선행만이 내 구원이 된다는 매우 영성적인 말씀이었다.


점심은 ‘담양대통밥’(그 집도 ‘원조집’이란다)을 먹고 모처럼 한가한 여세를 몰아 ‘죽녹원(竹綠園)’까지 방문하여 담양을 지날 적마다 ‘소쇄원’과 ‘죽녹원’을 언젠가 방문하겠다며 미루던 숙제 하나를 해냈다. 5만여 평의 대나무 숲이 보존되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그곳을 가꿔 아름다운 시민공원을 만든 담양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담양의 그 아름다운 메타세코이아 가로수길도 순창으로 넘어오면 단 한 그루도 나무가 안보여 먼 옛날 지방군수들의 정치가 저렇게 달랐구나 한눈에 보인다.



설치예술가 이이남씨의 작품을 감상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문정에서는 보기 힘든, 아이들과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들도 쭉쭉 하늘로 뻗은 대나무 줄기처럼 보기에 좋았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메타세코이아 길을 달려 순창 남원을 거쳐 휴천재에 돌아오니 저녁 7시. 


제주에서 지리산까지 12시간 걸린 셈이다. 어리석은 여자 하나를 청와대에서 삼성동으로 쫓아내는데 여섯 달이 걸린 저녁뉴스가 뜨고 있다. 나무는 쓰러뜨리기까지 고생이지 쓰러진 둥치에서 잔가지를 치는 일은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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