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3일 월요일, 맑음
3년 전이었던가? 수술을 하고 서울집에서 지리산으로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안타까운 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을 때였다. 지리산에서 누군가 생각지도 못한 택배상자를 보내왔다. 휴천재 이웃의 인규 씨였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봄은 다 가고, 그러다 봄나물 하나 먹어 보지도 못하고 여름을 맞겠구나 싶어 보냈단다. 옻나무순, 취나물, 쑥, 엄나무순. 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어떻게 이런 자상한 생각을 했담?! 산골의 봄 내음이 가득한 산나물은 그 자체가 나를 끌어당기는 자석인양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그중에도 엄나무순이 제일 향기롭고 맛났다.
‘나도 내려가면 텃밭에 엄나무를 심어야지’ ‘봄날에 아가손 같이 보드라운 순을 따서 데쳐 먹고 짱아찌도 담그고 전도 부치고 친구들에게는 선물로 보내기도 하고…’ 심기도 전에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 봄이 오기를 기다려 다음 해에 엄나무 열 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욕심만 앞서고 돌보는데 소홀했던지 열 그루가 다 말라 죽었다. 속이 상하던 차에 미루네가 덕산에 서는 오일장에 나무 사러 간다기에 우리도 엄나무 몇 그루를 부탁했더니만 이번엔 실한 나무들 다섯 그루를 사왔다. 정성을 기울여 잘 심었지만, 여름엔 그런대로 내 눈치를 보았는지 겨우 생명을 부지하더니 겨울 가고 봄이 왔을 때는 싹은커녕 묘목 심겼던 흔적조차 없었다!
문정리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내가 언젠가는 자작나무와 엄나무를 꼭 심겠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어제 담양 오일장에서 그것들을 보았다. 사고는 싶었지만 보스코의 지청구가 따를 것 같아 꾹 참았다. “두 번이나 심었는데 안 됐잖아? 집에 있는 나무나 잘 키워”라고 할 것 같아 작전상 후퇴를 하고선 오늘이 3, 8일 인월장이니 가서 사야지 맘먹고 보스코 몰래 인월로 갔다.
묘목상 아저씨에게 왜 내가 나무를 못 키웠나 물어보니 아마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한 것이어서 말라죽거나 얼어죽었을 거란다. 자기 것은 작아도 노지에서 키운 묘목이라 잘 살 거란다. 장삿속 말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엄나무 세 그루, 그 곁에 사진속의 고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체리 세 그루를 샀다. 자두나무에 접을 붙인 체리라는데 내년부터는 열릴 거란다. 회초리 하나를 꽂아 놓고 미루나무만큼 커다란 나무에 체리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농부만의 특권이다. 나무를 사다 주며 심어달라는 내 말엔 보스코가 별소리가 없어 다행이다.
내일 아침 일찍 배나무에 첫 번 소독을 해야 하는데 소독통 분무기 파이프가 끊어졌다는 보스코의 탄식(작년에 산 건데). 그걸 사러 읍에 가다 면사무소에 들렀다. 작년에 동네길 공사를 하면서 잘못되어 우리 집 땅을 파고 내려가는 물길을 바로잡아 주겠다던 면사무소 담당이, 이번엔 이장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 오란다. 돈이 나오면 동네 공사의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우리 길을 하는 데 이장이 반대를 한다나?
작년 봄엔 이장이 동네 쓰레기 하치장을 없애서 한바탕 했는데 하자보수공사까지 이장의 허락을 받아 오라고? 도회지에서는 통장 정도의 직위인데 시골에서의 이장은 완장 찬 순사다. “주민과 이장을 쌈 붙이는 거요? 그렇게는 못 하겠고, 나는 내 방식대로 하겠소”라고 일어서니 “다음 주 까지만 기다려 주시면 하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라며 나를 말린다. 암만해도 문정리에도 김말람을 불러내려야겠다.
체리 세 그루, 엄나무 세 그루를 밭에 심다
오늘 큰아들이 거의 한 달 예정으로 회의차 귀국하였다. 으레 아들을 맞으러 서울을 가야 했는데 우리가 봄 농사에 시간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준 아들이 우리를 배려하였다. 오늘부터 며칠 처가에서 보내고, 그다음 연속되는 회의에 들어가서 분주하니까 우리더러는 20일경에나 서울로 올라오란다.
청와대에서 쫓겨나 삼성동에 간 여자도, 그 주변에 모여든 날파리들도 꼬장을 부리긴 마찬가지다. 간신모리배만 주변에 모아두었고 정치적 청맹과니들만 옆에서 우글거리니 현재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나 보다. 마지막 날까지도 헌재의 탄핵기각을 자신했다나? 옳은 말해 주는 인간이 하나만 있었어도, 타인의 충정 어린 조언을 들을 넉넉한 귀만 가졌어도, 본인도 나라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일은 끝났고 근혜없는 봄은 왔는데도 뭔가 개운하지 못한 이 기분은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