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30일 일요일, 맑음
우리 노년에는 정말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한다. 주변의 또래들이 하는 말이다. 월요일인가 보다 하면 벌써 주말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다른 주중이다. 그런데 요즘 대선기간은 별나게도 더디 간다. 빨리 선거가 끝나야지… 손에 일이 안 잡히고 참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일을 해왔고’ ‘이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렇게 정치하겠다’는 자기 얘기만 하면 되는데 남을 끄집어 내리려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펙트체크를 한다며 더 교묘하게 사람의 눈과 생각을 어지럽히는 대중 매체들 때문에 더 견디기 힘들다. 평소에도 누가 남을 욕하는 건 참 듣고 있기 힘들고, 거짓을 말하는 건 더더욱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이 기간이 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어제 ‘저녁기도’에서 오늘 복음을 당겨 읽으며 보스코가 작사한 원선오 신부님의 ‘엠마우스’를 여러 복음성가 가수들의 목소리로 들었다. 아침에 방신부님이 보내신 문자에도, 이날이면 ‘엠마우스’를 전 교우와 함께 불렀는데 올해는 혼자 드리는 미사가 외로워 더 큰소리로 부르셨단다. 독신의 사제로 평생을 교우들과 함께하다 은퇴한 노사제들은 그 나날이 더욱 쓸쓸하고 ‘엠마우스 날’이면 어느 날보다 고독하시려니, ‘4월의 이 마지막 날에…’
오늘 공소 미사를 드려주신 장신부님은 우리 삶이 어느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엠마우스의 연속이라고, 어디서건 발을 떼고 떠나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이 떡을 떼어주실 때에야, 아니 그 성체를 받아모시는 순간에 눈이 떠지고 그분을 알아 뵙고 감사의 시간을 체험한다고 강론하셨다. 모처럼 문정공소가 교우들로 가득찼다.
과연 저 두 제자들은 어디가 목적지였을까? 어디까지 가는 길이었을까? 과연 목적지는 있기라도 했던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좌절에 짓눌려 먼지 펄펄 나는 신작로를 터덜터덜 걸어가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제자 중 제일 현실적이던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한 때를 곱씹으며 그물을 손질하다가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갈라네” 하며 일어서던 동작이 눈에 선하다.
절망한 그들에게 난데없는 그리스도의 출현이라니! 엠마우스로 가던 두 제자가 살아계신 그분을 보고서도 몰라보다니! 그들이 스승에 절망했던 헛소리를 안 하고 ‘나자렛사람 예수’께 품었던 기대를 솔직히 털어놓던 말마디,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고 벌써 사흘! 절망한 사람들에게서 나오기 힘든 신앙고백이었다.
어떤 절망과 공포에서도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오늘 이집트 카이로에서 로마로 떠나시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북한과 트럼프에게 “당장 무모한 치킨게임을 중단하라! 제발 빌고 또 빈다”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 ‘반공’이라면 그리스도까지 얼마든지 팔아넘기겠다는 크리스천들, 특히 우리나라 대형교회 목사들과 신도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씀도 하셨다. “왜곡된 믿음을 갖느니 아무것도 믿지 않는 편이 낫다”
전 세계가 히틀러만큼 미쳐 보이는 트럼프의 만행으로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에 떠는데 우리만 너무 태연한가? 그분은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했다’고, 무모한 두 나라 지도자들에게 ‘제발 그만하라’고, ‘외교적 수단으로 풀라’고, ‘확전이 되면 인류 절반이 죽는 게 아니라 태반이 죽는다’고 경고하고 호소하셨다.
점심은 스.선생댁에 올라가서 들었다. 봄이 오나 했더니 당장 여름이다. 30도 가까이 되는 날씨에 하늘은 요즘 세상처럼 뿌옇고 앞도 안 보인다. 미세 먼지인지 황사인지 구분도 안 가고 해결할 답도 안 나온다.
미루네가 영광에서 돌아오다 휴천재에 잠깐 들러 모시떡을 ‘떡보영감’ 보스코에게 안겨주고는 또 다른 일정으로 쌩~하니 가버렸다. 그니처럼 엄청난 일정을 다 소화해 낼 체력도, 그 모든 사람을 감당하는 오지랖도, 항상 방글방글 웃을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도 참으로 하느님 선물이다. 귀요미 그니가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