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일 금요일, 맑음
작년보다 양파를 배쯤 더 심었다. ‘작년에 다섯 망을 캤으니 올해는 열 망은 족히 나올 게고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한 망씩 보내야지…’ 혼자 오져서 처음 자라오를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려가 보았다. 그러나 내 계획을 이미 알고 누가 심술을 부렸는지 비는 안 오고 잎과 줄기는 이미 누렇게 말라버렸다. ‘양파는 누워서 큰다’고, ‘쓰러진 줄기와 잎도 귀하게 모셔라’ 해서 몸 푸는 막내며느리 돌보듯 영양제와 물을 번갈아 주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양파가 나를 제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서울에서 20일이나 시간을 보냈고, 이제 와서 아사 직전의 양파를 보고 한탄만 하니 나 역시 염치가 없다.
이탈리아 요리대로 엄지만한 양파를 굽고 옆에 멋진 안심 미디엄을 구워 휴천재 방문객에게 대접하면 한 열 번은 먹을 분량의 ‘새끼 양파’는 나오겠다. 작년 겨울 화재로 집의 일부와 공장을 홀딱 날려버린 한기조씨네서 부조도 할 겸 양파 몇 망을 팔아주라는 말씀 같다.
감자는 또 어떤가? 지금쯤 “보라 꽃은 보라 감자, 흰 꽃은 흰 감자” 라는 노래를 부를 무렵인데 꽃대 위의 꽃은 피지도 못하고 마른 채로 시들었다. 전쟁이나 위기 상황이 오면 여자들은 임신이 안 되고, 집짐승은 물론 주인 없는 산짐승도 위기의식을 느껴 새끼를 못 밴단다. 난리가 나면 짐승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줄기가 말라 없어진 자리를 후벼 보니 메추리 알 보다 조금 크거나 작은 감자알이 암탉 뱃속의 알주머니처럼 조랑조랑 모여 있어 처량하다. 참 가슴이 아팠다.
농민들에게 작물은 모두 다 ‘내 새끼’ 같은 아픈 손가락이다, 특히 가뭄 타는 작물은… 동네에서 세도가 좋아 마을 관정에서 물을 끌어다가 모를 심는 이장네 논은 물이 채워져 있지만 그 곁에서 유영감님이 논 바닥 만큼이나 타 들어가는 얼굴을 하고 한숨을 쉬신다. “벼를 못 내셨어요?” “어데, 물이 있어야 심제. 후제에 비라도 와야 모를 내제, 그냥은 못 하는기라!” 유노인은 깊은 한숨에 땅이 폭 꺼지고 그 속으로 곧 사라질 것 같다.
이장네는 제대로 심었지만 유영감네 논은 한심하다
세상이 이리 변한 게 언제부터일까? 세상과 기후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기에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미처 모르지만 깨어있는 학자들과 운동가들은 이 모두가 우리의 욕심이 만든 결과임을 알고 경종을 울려준다. 전력 소비에서 오는 온실가스 발생, 우리가 쓰는 자동차 화석연료, 집단 목축 그밖에 숱한 영향으로 지구가 몸살을 하고 있다. 그렇게 그 바뀐 기후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인간류가 고통을 받고 있다.
‘환경연합’에서 오는,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 「함께 사는 길」 이달치 기사를 보면, 지구온난화로 인도 콜카타에서 150킬로 떨어진, 물속으로 침몰하는 ‘고마라섬’ 이야기가 나온다. 이 섬은 한때 20제곱킬로미터의 섬이었는데 히말라야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홍수로 침수되어 이젠 5제곱킬로메타밖에 안 남았단다. 지난 30년간 600가구 이상이 이주를 했고 이제는 겨우 5,000여명, 갈 곳 없고 힘없는 주민만 남아 매년 혹독한 장마와 폭풍과 싸우며 고통을 당하고 있단다.
이 외에도 수많은 섬들이 없어지고 그 섬에 존재하던 국가가 사라지며 갈 곳 없는 난민은 매 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모두 가난하고 힘없어 소리도 못내는 나라에서 일어나기에 더 화가 난다. 이런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인 강대국 미국이 바로 오늘 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세계 2위 탄소배출국으로 이 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최근 사드문제로 우리를 괴롭히는 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화나는데 거기다 기름을 부었다.
“하느님, 우리 눈으로 당신의 정의를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광화문에서 보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