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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망초가 땅을 차지하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 전순란
  • 등록 2017-06-30 10: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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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9일 목요일, 맑음


엄마를 돌봐주는 아줌마가 6시쯤 방문을 두드린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으러 가자는 신호다. 엄마는 귀찮은지 돌아누워 두 눈을 꾹 감는다. “엄마, 아줌마 화나서 가버린다” 엄마가 나를 돌아보더니 눈을 흘긴다. ‘도움이 안 돼. 잠 좀 자자는데 딸년도 별 소용이 없어’ 하는 긴 대답을 응축한 그 눈길 앞에 ‘참 세월이 허망하구나, 사람을 저렇게 망가뜨리다니…’ 더는 말을 안 하고 얼굴을 돌리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엄마가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비틀거리는 엄마를 부축하여 화장실로 모셔간 아줌마가 기저귀를 갈고(잠들면 요실금으로 약간씩 적신다), 이 닦고 세수를 하라고 지켜 서 있다. 아줌마가 사라지면 칫솔질도 세수도 물 찍어 바르는 수준이어서 감독을 해야 한단다. 말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생활태도다. 


시간이 갈수록 퇴화하여 유치원 수준이 되고 그 다음엔 영유아 수준이 되었다가 엄마 태속의 태아로 돌아가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온몸을 깊게 구부리고 누웠다가 어머니인 대지에 안기겠지. 누구나 그 엄마의 품으로 녹아서 흙으로 사라질 테니까….




어제 저녁식사 후에도 먼저 3층으로 올라와 신발과 밀차를 방안에 들여놓은 후 문을 꼭 잠근 채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을 안 해 나한테 ‘엄마 찾아 삼만리’를 시켰다. 원장님이 오셔서 만능열쇠로 문을 열자 말썽꾸러기 사내애처럼 빠끔히 내다보던 엄마! 양로원에 모시고 있어 돌보미 아줌마들이 보살피고 수시로 들여다보니 우리도 ‘그런가 보다’ 웃어넘기지 아마 집에 모시며 매일 그렇게 숨바꼭질을 하자면 긴병에 불효자가 되기에 딱이다.


식사 후에도 침대에 누운 엄마를 겨우 달래서 자동차에 싣고 미리내 성지를 천천히 구석구석 구경시켜드렸다. 작년만 해도 녹두를 경작하던 넓은 땅에 개망초 흰 꽃이 제 세상 만나 게을러진 인간들의 틈새를 가득 메우고 있다. ‘망초가 땅을 차지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는데… 예전엔 한 뼘의 땅에도 씨앗을 심고 정성껏 가꿔 열매를 거두었는데 자연에 대한 그러한 경외심이 사라져 인간을 망가뜨린다는 얘기 아닐까?


엄마는 차츰 낡아져가고 나는 낡은 엄마를 바라보는데 차츰 익숙해지며 무거운 걸음을 뗀다. 사람들의 장수로 온 땅이 망초 같은 인생들로 채워져 가니 개망초를 가꿔야 하는 젊은이들이 불쌍해진다. 나 역시 주변세상과 주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게 낡아져가는 중이지만….




한국염 목사에게 양파자루를 갖다 주러 정릉의 아파트에 갔다. 그곳에 내 차를 두고 나왔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올해 두 번째 정기이사회가 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있었다. 다들 바쁘기로 치자면 우리나라에서 2등하기 어려운 여인들이 대구, 전주, 제주, 지리산 등지에서 모여와 회의를 하고 곧이어 각자 떠나온 곳으로 바삐 돌아갔다.


오늘 의제는 ‘후원의 날’ 행사에 관한 일과 후원자 모집을 위해 이사들에게 가방을 만들어 하나씩 들려주며 정기 후원자를 모집해 오라는, 그야말로 ‘앵벌이교육’이랄까… 나도 이번 토요일 우리집 오는 친구들에게 한 달에 만원씩만 후원하라고 깡통을 들이밀 생각이고 국염씨는 덩달아 깡통을 두드려 주기로 했다.



인사동 골목은 넝마집 저리가라다


국염씨와 나는 인사동에서 상옥씨를 만나기로 하고 인사동 뒷골목을 돌고 돌아 약속장소로 갔다. 서울시내에 아직도 이런 창자 속 같이 복잡한 세상이 존재했던가? ‘우리가 아는 게 정말 별로 없구나’ 싶었다. 쓰레기를 예술로 쌓아놓은, 말하자면 인사동 안의 난지도. 나는 우리 안에 온갖 잡생각을 못 버리고 쌓아놓는 난지도를 그곳에서 만났다.


상옥씨와 국염씨는 오늘밤 우리 우이동집에서 오랜만에 얘기도 하고 함께 자기로 했다. 언젠가 휴천재에서 우리를 뒤집어지게 웃기고서 먼저 훌쩍 떠나버린 종례를 생각하며… 재미난 얘기를 아무리 해도 그 친구 생각에 다들 우울했다. 세월이 가고 우리가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만날 날이 온다면 그때는 오늘 못 웃은 몫까지 양껏 웃어 보리라.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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