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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신구교 ‘구원독점’ 너스레는 봉이 김선달 대동강물 팔아먹기
  • 전순란
  • 등록 2017-07-03 10:26:51
  • 수정 2017-07-03 11: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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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일 일요일, 흐리다 비


쏟아지는 오후의 빗소리에, 그동안 쌓였던 피곤에, 물에 젖은 솜 같이 잠 속으로 가라앉아 깨어날 줄 모른다. 두어 시간 자고 또 잤다. 낮잠 자기를 언제 했나 기억도 없는데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친구들이 떠나고 일어나 앉은 저녁나절, 하늘에 구름이 장마 후에 생소한 얼굴로 뒤엉켜 내려다본다. 매미 소리도 빗물에 씻겨 투명해졌고 한길건너 강물 흐르는 소리도 조금 더 커졌다.



유영감님이 지질한 당신 논을 들여다보고 서 있다. 벼가 거름발을 받으면 곧 클거라고, 한두 주 먼저 심고 늦게 심어도 추수 할 때 보면 그렇게 차이가 없다고, 작게 태어난 놈이 장대처럼 클 수도 있고 우량아로 태어났다 동네방네 자랑하던 놈이 지지리 병치레 할 수도 있다고, 부모가 쓸 데 없는 욕심을 버려야 자식농사도 제바로 된다고, 논농사도 욕심만 부린다고 잘되는 게 아니라고… 70 넘게 논농사의 달인이 하시는 말씀이다.


오랜만에 신부님이 안 계셔서 미사와 영성체 없이 공소예절을 하려니까 걸게 차린 밥상을 받다가 찬밥 물에 말아 김치 한쪽 얹어 먹는 기분. 그래도 한목사, 이엘리, 엄엘리가 함께 공소예절을 하고 사랑의 애찬까지 같이 하니 섭섭한 마음 한 구석은 메울 수 있었다. 말씀의 전례만으로도 신앙을 유지했던 내가 성찬의 전례에 갈증을 느끼는 걸 보면 ‘구교우’ 다 된 것 같다.



공소식구들이 서둘러 떠나고 우리 다섯만 공소식당에 남았는데, 학구적인 여성동지들이 교수님께 물어볼 질문이 많았다. 특히 개신교의 세례를 인정 안하는 신부님들이 재세례를 주는 것을 놓고 7대종단의 세례는 유효하기에 재세례를 주면 안 된다는 말과, 최근에는 ‘성공회의 세례만 유효하다’고 했다는 이엘리의 말에 최대주교님께 입교식만한 이 ‘무식한 프로테스탄트’는 지옥불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라도 해야 되는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께서 “너희는 왜 그렇게 남들이 구원받는 게 그리도 배가 아프냐?” 하실 것 같고 “저 사람들 세례 제대로 못 받아 구원 못 받을까 걱정되섭니다”라는 대답에는 “그건 너나 걱정하세요. 구원은 내가 할 일이니까” 라고 하시지 않을까? 신교든 구교든 구원을 독점한다는 너스레를 보면 ‘봉이 김선달 대동강물 팔아먹기’다.



집에 와서 눈앞에 지리산을 보고도 나가지 않고 보스코에게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기에 적당히 마무리시키고, 서암정사의 석굴암이라도 보러가자고 채근하여 집을 나섰다. 어제 ‘수선사’도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늘 ‘서암정사’에도 사람이 가득하다. 순례자들에게 물어보니 5월 윤달이라서 ‘삼사순례(三寺巡禮)’를 하면 부처님의 보살핌을 많이 받는단다. 성당에서도 성년에 이와 비슷한 성지방문이나 성당방문을 보았기에 인간 신앙의 모습은 많이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오도재로 함양을 가다 ‘지리산전망대’에서 비록 발로 오르지는 못하지만 천왕봉을 눈으로 오르고 덕유산과 가야산 자락을 먼 눈길로 더듬어 보았다.



미루 부부가 읍으로 와서 ‘샤브향’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다음 필수코스 ‘콩꼬물’에서 눈꽃 빙수를 먹고, 시간이 바쁜 미루는 산청으로 넘어가고, 우리 다섯은 연꽃이 피가 시작하는 ‘상림연지’로 갔다. 오늘 따라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한 걸 보니 그들도 인생이 허허하고 심심했나 보다.


이엘리가 일행을 차로 데려가야 하는데 군산에 들러 딸도 챙기고, 엄엘리는 성남에, 한목사는 서울 정릉에 ‘도어앤도어 택배’를 해야겠다면서 떠났다. 큰며느리로서의 자세가 확고한 이엘리는 7시간 넘어 운전을 하여 부천집에 도착했다는 소식.


우리 부부는 테라스에서 저녁기도를 드리고, 요가를 하고, 저녁식사 후 논길 밭길을 걸으며 산위에 구름이 걸리고 몇 안 되는 집집마다 호롱불이 하나씩 켜지는 시간까지 산보를 하면서 우리 둘이 함께하도록 하느님이 주신 시간을 감사드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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