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일 화요일, 샤프하유센은 맑음 스트라스부르그는 소나기
간밤에 늦게까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엊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듯이 집안 전체가 시침을 뚝 떼고 정리정돈 되어 있다. 친구 남편 베아트의 솜씨다. 30여 명의 손님에게 성대한 만찬을 대접한 흔적은 아직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뿐. 어젯밤의 잔치는 내 친구가 이 마을에서도 교회공동체에서도 유지로 자립잡고 있다는 증거다. 8시에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보스코가 15분 전에서야 나를 깨웠다. 내가 너무 곤히 잠들어 있어 피곤한 것 같아 차마 깨울 수가 없더란다.
어제는 8시간 넘게 운전을 하느라, 그것도 인터라켄을 지나 루체른까지의 험한 산을 넘고 츄리히의 트라픽을 만나 가다서다를 스틱으로 운전을 했으니 시원찮은 다리가 주인 잘못 만나 꽤나 고생을 했나보다. 어제 파티 준비도 뒷정리도 남편 베아트가 하더니 아침도 그가 제일 먼저 일어나 준비하고 있다.
라인팔의 거창한 폭포소리가 신선한 새벽을 가르는 시간, 먼 산은 눈을 이고 있고, 가까운 구릉은 물안개 너울로 새색시 치장을 하고, 드레스 아랫자락을 온통 풀꽃으로 꾸며 살살 끌면서 사뿐히 다가선다. 친구 말로는, 멀리 알프스 설경까지 보이고 노을이 끼면 시골 이발소에 걸린 그림이란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따라가 사내아이처럼 상구 머리를 깎으며 주눅 든 눈에 오로지 황홀했던 장면은 이발소에 걸린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림, 해 넘어가는 들녘, 황혼에 눈부신 그 그림뿐이었으니 어린 날의 이상을 오늘 아침에 드디어 맞이한 셈이다.
스위스 건국기념일이라고 가까운 성당에 미사를 갔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친구가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을 매일미사에서 찾아주어 본당 신부님이 무슨 얘기를 하시나 대충 짐작할 뿐이다. 1536년에 최초로 스위스 연방을 결성한 기념일이란다. 라틴어학자 보스코는 스위스의 국호 자체(Confederatio Helvetica: 헬베티아 연방)가 라틴어로 되어 있는 유일한 국가란다. 마지막 성가대신 스위스 국가로 파견송가를 하는데 스위스 국가 전체가 성가 못지않은 노래였다. ‘스위스찬가’라 불리는 구구절절에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이 스며있다.
아침이 노을로 당신을 금빛으로 물들일 제
하늘의 임금이여 내 영혼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알프스 만년설이 저녁놀로 붉게 물들 때,
우리는 당신께 기도하러 나서나이다
조국땅을 위하여
조국땅을 위하여
시민이여, 하느님이 그렇게 해 주시기를
시민이여, 부디 하느님이 그렇게 해 주시기를 (이탈리아어본)
심지어 그들이 쓰는 5프랑 동전에도 “주님이 보살펴 주시리라(dominus providebit)” 라는 라틴어 문구가 빗금 부분에 새겨져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험한 산으로만 에워싸인 나라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 하느님 손에 의지하는 길이었나 보다. 미국이라는 폭력 앞에 다시 ‘8월 위기설’로 조마조마한 한반도의 운명을 두고도 마음이 더욱 절실하여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이 새삼스럽다.
미사 후에 베아트네집 건너편 쪽 성으로 가서 친구의 작은아들 보람이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불과 열다섯 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10여 년간 엄마 무덤에 묻힌 아들이다. 하느님 품에서 남은 가족을 위해, 특히 엄마의 조국을 위해 발어 달라고 소년의 맑은 영혼에 부탁도 했다.
라인팔 폭포에 내려가 장관을 구경하고 폭포가 건너다 보이는 절경의 식당에서 친구부부에게 우아한 점심식사를 대접받았다. 10월 한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곳을 떠나 독일 땅으로 두어 시간 달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넘었다. 빵기가 예약해준 브릿 호텔에 짐을 풀고 건물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요기를 하고서 지친 몸을 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