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일 수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너무 조용해 마치 지리산 집인가 착각했다. 새로 지은 호텔이라선지 손님이 우리까지 여남은 되는지 아침도 우리 둘이 오붓이 먹었다. 느긋이 아침을 먹고는 관광도 노인답게 ‘볼 수 있는 만큼만 보고, 걷는 만큼만 걷자’고, ‘지치면 멈춰서 사람 구경이나 하자’고 마음먹으니 젊은 시절 같은 조바심도 사라진다.
구텐베르그 상 앞에서
전철 D선을 타고 로똥드에서 AD번 버스로 갈아타고 레샬르까지 가서 한 10분 걸어 노틀담 대성당으로 갔다. 스트라스부르그는 큰아들 빵기의 강추가 있어 왔는데 오길 잘했다. 프랑스 동북부에 독일과의 국경에 자리잡은 알자스-로랭이어서 부단히 독일로 합병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왔다를 반복한 불행을 겪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의 수도라고 내세우는 도시답게 전쟁과 갈등 속에 평화가 얼마나 절박한 인간의 존재의 기반 인가를 깨우쳐준다. 양편다 문화도시로 가꾸다보니 지금은 유럽의 수도를 자칭하는 곳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공부한 신구교 학자들도 내가 많이 안다.
유럽의 대도시가 다 그렇듯이 대성당, 대성당 맞은편의 광장, 지금은 박물관이 된 로한궁이 조화로움을 이루어 아름답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프랑스 최초의 도시로 그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같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종탑 높이가 124m의 웅장한 고딕성당으로 12세기부터 짓기 시작하여 거의 300년 가까이 지어졌단다. 19세기 가서야 지금 모습으로 최종 모양을 갖추게 되었단다. 겉으로도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합쳐진 모습이다.
성당 내부의 기다란 돌기둥, 금빛 파이프 오르간, 양편 벽의 스테인글라스들과 로소네(대형 장미창)의 아름다운 색채와 세세한 그림들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 11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해서 밀려나와 12시에 성당 옆으로 사람들이 긴 줄을 서기에 따라 섰더니 성당 안에 설치된 ‘천문시계’를 돈받고 보여 준다. 1843년에 만들어진, 높이 18m나 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천문시계란다. 태양과 별, 황도에 따른 12궁도 시계로 만들어져 해골과 어린이, 청년, 노인 인형이 돌아가는 광경이 꽤 교훈적이다. 죽음 위에 그리스도가 모셔져 있고 12시 30분에 그분 앞으로 시계가 작동하면 12사도가 지나가고 베드로의 상징물인 수탉도 3번 울리며 종을 쳤다.
성모마리아의 본 모습은 아들 잃은 어미를 위로하는…
광장 가까이에 있는 로한궁은 주교관이던 궁전이다. 남편의 호기심을 채워주느라 궁전장식을 보여주는 ’데코레이션 박물관’, ‘미술관’, 어디든 땅만 파면 구석기시대부터 로마제국시대까지(로마군이 진주해 있던 지역)의 ‘고고학 박물관’ 셋을 관람하고 나니까 내 무릎과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후 4시에는 유람선을 타고 다리도 쉴 겸 ‘일강’을 한 바퀴 돌았다, 신도시까지. 16번째 채널에 한국말 안내도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주변으로 성니콜라오 성당, 지금은 드라곤 호텔로 쓴다는 루이 4세의 궁전, 프티프랑스 지역, 군데군데 수면이 달라 갑문을 여닫는 스릴도 재미있었다. 유럽의화와 유럽인권재판소 같은 유럽연합 건물은 최신식이었다. 그런데 독일 통치시대에 빌헬름 2세가 슈트라스부르그 대학을 세운 명분이 기가 찼다. “지식이 권력을 빛나게 한다!”
그리스도교가 나자렛 사람을 잊으면…
베드로가 닭울음을 못 들으면
‘삼총사’에 나오는 리슐리에 추기경처럼
교회는 인류사의 웃음거리가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최고학부를 나오고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국가와 정치를 망치고 줄줄이 수갑을 차고서 재판을 받는 작자들이 생각해냈을 표어다. ‘지성인이 되지 못하는 지식인은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하다’는 현실에서 지식이 출세욕과 통치욕에만 쓰이면 얼마나 국가와 일신을 망치는지 우리 국민이 목격하는 중이다. 특히 사법을 담당한 판사 검사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뿌리박고 아직도 세도를 부리는 여세를 우리가 실감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노틀담성당 부속박물관을 둘러보고는 과부화된 몸을 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더는 생각 말고 이젠 쉬어야겠다.
“백조들 회색이네?”했더니 어려서 그렇다고, 어른이 되면 하얗다고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