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밥상도 정치식견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라야 유쾌하다
  • 전순란
  • 등록 2017-09-15 10:52:06

기사수정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비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지 마지막 날까지 비가 내린다. 내일 우리가 떠난다고 이레네가 점심준비를 했다. 마리오네 바로 옆에 별장을 두고 트레비소에서 심장전문의를 하는 프란체스코와 디아나 부부도 초대를 받아 왔다. 예전 세레나 생전부터 우리와 아는 사이고, 어느 핸가 그가 낚시질해온 농어를 세레나가 맛있게 요리해낸 기억도 있다. ‘오늘은 왜 농어를 안 잡아 왔냐?’니까 산에 버섯 따러 갔단다.



이곳은 가을이 우기여서 매일 비가 오니까 여름 가뭄에 숨죽이던 버섯이 사방에서 고개를 내민다. 엊그제 저녁식사에도 이레네 아버지가 따온 모듬버섯볶음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오늘 프란체스코는 버섯따러 갔다가 산림감시원에게 걸렸단다. 버섯은 동네주민만 딸 수 있고 아니면 허가증을 받아와야 하는데 주민등록증 내놓으라 해서 참 난감했단다. 30년간 이곳에 별장을 두고 오가지만 거주지는 트레비소이기에 사정을 설명하고 또 다행히 적정량(3kg) 미만을 따서 봐주더란다. 주민도 적정량 이상을 채취하면 벌금을 낸단다.


위반하면 처벌이 엄하고 공정하여 봐주는 일은 좀처럼 없다. 낚시도 허가증이 있어야 하고 잡아서 크기를 보고 작으면 도로 놓아준다. 우리처럼 버섯이고 물고기고 씨를 말릴만큼 욕심을 내지 않는다. 자연을 위해, 물고기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서로 정도를 지키는 문화다.



이레네는 작년에 큰수술을 받은 후유증으로 많이 야위고 힘들 텐데도 우리 땜에 매일 손님치레를 하니 보기에 참 미안하다. 옆에서 마리오가 시장도 봐다 주고 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며 여러 가지로 아내를 돕는다.


이레네 아버지가 농사지은 감자로 뇨끼를 하고, 감자튀김과 로스트비프를 차려냈다. 이곳은 아직도 하지감자가 잎이 마른 채 밭에 묻혀 있고 양파도 그대로 심겨져 있어 필요할 때마다 캐다먹기 땜에 늘 신선하다. 우리 문정리처럼 단체로 심고 단체로 거두는 일과 사뭇 다르다.


오늘도 식탁의 대화는 북핵과 유엔의 대북제재인데 이런 급박한 상황을 한국사람들은 어찌 견디느냐는 호기심이 주종을 이룬다. 식탁의 인사들이 모두 인텔리겐자여서 한반도의 북핵사태나 동남아 미얀마의 로힝야족 인종청소나 아프리카 난민의 비극도 미국의 군수업자들 농간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자기들 보기에 북핵사태란 북한과 미국이 뒤로 딜을 해서 북한의 광기를 내세워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기장사를 하는 꼼수 같단다.


우리가 숱한 밤을 자고간 마리오네집 


두 해 전 여름을 보낸 아고르도(Agordo, Mas) 펜션


이번에 우리가 두 주간을 묵은 시롤(Siror)의 펜션 


아프리카 난민은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고도 한다. 아프리카의 그 풍부한 천연자원을 유럽이 모두 수탈했고 싼값에 수탈하려고 저런 내전과 기아를 일으킨다는 말도 한다. 이탈리아 북쪽은 옛날부터 일찍 깨어 사회당을 지지하는 주민이 많고 풍요하게 자라더라도 어른이 되어서까지 사회정의 감각을 유지한다.


오늘 문대통령이 ‘핵재배치도 핵개발도 안 하겠다’고 단언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 정신인 국민이라면 모두 당연한 말로 받아들여야 하고,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인도적 현물 원조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수긍해야 한다는 것이 점심식탁의 중론이었다. 밥상 역시 정치식견을 함께하는 사람들과라야 참 유쾌하다.


우리가 세 여름을 보낸 카오리아 별장 


점심 후에는 2005년, 2006년, 2012년 우리가 세 번이나 여름휴가를 보냈던 카오리아를 찾아갔다. 로마 변호사 라우라(보스코가 대사관 전담으로 초빙했다)의 자그마한 별장인데 빗속에서 소 한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고 문과 창에 빨간 페인트를 새로 칠한 것 말고는 전의 모습 그대로다.


사슴농장에서는 수사슴들이 뿔자랑을 하고, 여름내 산에서 풀을 뜯던 소떼가 가을비 속에 마을의 외양간으로 내려오는 행렬도 간간이 보인다. 집에 돌아와 내일 떠날 가방을 챙기고, 쓰레기를 정리해서 버리고, 집안 청소를 하고나니 가을비 속에 방랑자의 밤이 깊어간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