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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제주가 ‘잠들지 못하는 섬’인 까닭
  • 전순란
  • 등록 2017-10-20 10: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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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8일 수요일, 가랑비


희정씨가 ‘정말 좋더라. 꼭 들러보라’고 추천한 서귀포 성산읍에 있다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엘 가려고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러나 주차장에 차 몇 대만 왔다가 떠나고 너무 한가해 입구를 보니 ‘매주 수요일은 휴일’이란다. 오는 날이 장날? 루게릭병을 앓다가 49세의 나이로 생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고 간 사진작가가 아름다운 자연, 제주도와 뒹굴던 사진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매일매일 사진을 찍고 일기에 올리며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그 사진에 생명과 영혼을 담을 수 있는지’ 한 수 배우고 싶었는데…




오늘 점심에 내 대학 동기부부 신동일 목사와 김복련 씨를 만나러 제주 동쪽 끝 성산읍에서 70Km를 달려 대정까지 갔다. 신목사는 워낙 성격이 강직하고 정의로워 대학 다닐 적에도 올바르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다혈질로 눈 밖에 난 부당한 사람들은 그냥 두고 넘기지를 않았다. 그러나 월남전에 갔다가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목회생활 40년 동안 그 성격이 가끔 발동하긴 했지만 그의 약한 면을 충분히 차고 넘치게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 복련 씨다. 그니는 학교 때부터 유순하고 소리 없이 남을 돕고 매사에 양보하고 헌신적이었다. 더구나 오르간을 잘 쳐서 남편 목회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둘이 나와 한반이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해서 주변을 놀래게 했다. 가난한 목사 사모로 그야말로 동역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니는 지금도 대학 때의 그 모습 그 성품 그대로다.


신목사님네 귤밭에서 맛있는 귤도 따고…


우리가 보식 중이라니까 자연산 전복을 구해다 전복죽을 쑤고 신선한 야채샐러드에 더덕 무침을 맵지 않게 해 주었다. 어제 점심에 백록담에서 삼각김밥(보스코가 생전 처음 삼각김밥을 받아들고 까지를 못해 쩔쩔매자 우리 뒤에 줄을 섰던 수원고등학교 학생 하나가 “이리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라며 건네받아서는 줄을 잡아당겨 순식간에 까 주었다. 보기만도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완벽에 가까운 그의 실생활 무지는 또한 민폐다) 한 개를 먹고 12일 만에 먹는 죽이다. 맛있었다. 


절식을 하고 나니 음식이 고맙고, 음식에 스며있는 맛이 더 섬세하게 느껴온다. 단 것은 더 달고, 짜고 신 음식이 더 강하고, 향이나 맛이 혀끝에 더 소중히 다가온다.


“제사드릴 조상인 백 명인데 남은 자손은 한명 뿐”(백조일손 百祖一孫)의 비극현장 



식사 후 신목사 부부와 함께 제주가 ‘잠들지 못하는 섬’인 까닭을 보여주려고 소위 ‘불법주륙(不法誅戮)’의 현장과 ‘백조일손(百祖一孫: 제사드릴 조상인 백 명인데 남은 자손은 한명 뿐)’의 묘소를 참배했다. 4·3 학살을 자행한 이승만 정권이 6·25가 발발하자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344명의 양민을 잡아두었다가 252명을 제주 비행장, 대정읍 섯알오름, 일본군 탄약고 폭파 시 형성된 물웅덩이에서 학살하고 암매장한 사건이다.


일본군 앞잡이로 살다 해방 후 친미파로 둔갑하고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친일파 역사의 일환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한번도 청산되거나 단죄 받지 않은 채 태평성대를 누리는 저자들을 언제 청산할까나? 지금 이명박과 박근혜를 우두머리로 온갖 양아치 짓을 해온 무리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의 최후항쟁지로 제주를 택해서 급조한 비행기격납고, 바닷가 바위를 뚫어 만든 어뢰정 격납고와 탄약고도 보았다. 그 엄청난 것들이 제주도민의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졌다니 치가 떨린다.




그러나 대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워 자연림이 수없이 펼쳐진 곶자왈이란 생태계의 보물도, 고기가 뛰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새들, 고성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의 쇼, 제주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서쪽 끝의 수월봉과 화산쇄설층도 보았다. 


돌고래들은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공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원주민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차로 데리고 다니며 친절하게 안내해 준 두 친구가 참 고마웠다. 저녁 7시 넘어 렌트카를 반납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렇게 사흘간의 제주여행을 마치고 내일 아침엔 서울로 돌아간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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