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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혈연을 타고 흐르는 폭력의 악순환
  • 전순란
  • 등록 2017-10-23 14:33:14
  • 수정 2017-10-23 14: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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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맑음


사람은 용기가 부족할 때 자신을 포장 한다. 자신있고 자기에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자기 단점이나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정중하게 사과한다.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다.


나는 그의 성장기를 잘 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어린이에게는 잔혹하다 싶을 정도의 상황 속에서 컸다. 그가 말하는 대로 ‘실수는 곧 죽음’이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때의 훈련으로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노라”는 자부심! 어쩌면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런 숨 가쁜 인생은 자기 하나로 족하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훈련받았다는 똑같은 방법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심약하고 받아들일 그릇이 안 되는 아내와 자녀에게 그 방법을 구사하면 이미 불행은 시작이다. 결국 부자의 연을 끊고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나를 모를 때, 혈연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 모두가 함께 상처를 입는다. 혈연을 타고 흐르는 폭력의 악순환은, 언어의 폭력만으로도, 가정을 파괴한다. 아들도 아내도 곁을 떠났으니까…



돌아보면 그도 부친에게서 받아온 커다란 폭력의 피해자로 정신적인 외상이 깊게 파여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정 못한다. ‘아버지가 가했던 폭력도 사랑이었다’고 주장한다. 뒤집어 말하면, 자기가 처자식에게, 아랫사람들에게 가하는 언어의 폭력도 사랑이었으니까 자기처럼 참고 견디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남았으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랑도 폭력의 모습을 하지는 않는다’고 나는 믿고 또 체험해왔다, 적어도 결혼생활에서는… 육체적 폭력이든, 특히 언어의 폭력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도 나는 거부한다. 그것은 사람을 파괴하고, 사랑도 파괴하고, 본인의 인간성도 파괴한다. “악행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먼저 파괴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한 해 전 아랫동네 슈퍼 옆 반지하에 살던 꼬마! 술에 쩔어 있는 엄마 아빠의 피 터지는 부부싸움을 보며 자라던 아이. 그날도 소주를 사러 슈퍼에 왔더란다. “다섯 살짜리에게는 아무리 심부름이라도 술은 못 판다”는 슈퍼주인의 거절에 “나 그냥 가면 맞아죽어요.”라더란다. 주인이 놀라 겉옷을 올려 아이 등짝을 보니 그 애 역시 온몸에 멍투성이더란다.




그 어린애의 절망적이던 눈빛, 걔에게 저런 부모는 무슨 의미일까? 아이 역시 온몸에 멍투성이 될 만큼 부모 마음대로 안 되듯이, 아이들도 자기가 그리는 좋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데… 그 가족은 집주인에게 쫓겨나 이사를 갔다지만 오늘도 여전히 절망 속에 자고 깨는 하루가 가고 있을 게다, 걔가 컸을 때 어떤 인간이 되어있고 자기 혈관을 타고 흐르는 폭력의 악순환에서 가족을 어떻게 다룰까 하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암울해진다.


보스코가 뜰 정리를 깨끗이 했다. 코스모스 장미 가지 끝에 열린 씨앗을 다 따주고, 죽은 나무 가지며 창밖에 모기망 문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도 뜯어내고, 옥잠화 꽃대 마른 가지들도 말끔히 잘라냈다. 그런데! 수도계량기 옆에 30년간 자라 올라 올해 처음으로 꽃을 피운 연산홍도 싹 잘라버렸다! 창고에 들락거리고 수도계량기 검침하러 지나갈 때 걸리적거린다는 게 사형의 죄목이었다!




두 늙은이가 아래층 세놓을 방 가구를 옮기고 손질하느라 일을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딸랑! 내가 즐긴다고 친구가 먼 데서 간장게장과 나박김치를 담아 들고왔다! 감격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것! 생각지도 않았던 고마운 일이 벌어졌을 때, 그때가 감격의 순간이다. 친구는 낼 제사 음식 장만하느라 급하다며 그냥 인천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새우 한 마리를 즉시 먹었다,맛나다. 



카르멜라가 ‘알리탈리아’에 근무하던 옛직원들의 연말파티 사진을 보내왔다. 퇴직한지 수십 년 지나도 직원들을 부부로 초청하여 잔치를 벌여주는 기업정신이 대견하다. 특히 “알리탈리아: 역사는 곧 우리다”라는 표어가 눈길을 끈다. 


알프스 산마르티노에서는 마리오가 우리 생각이 나서 지난여름 우리랑 함께 간 곳들의 가을풍경을 사진 찍어 보내왔다. 여기도 저기도 좋은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저녁, 사랑만이 인간의 영혼을 기름지게 한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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