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맑음
나는 비바람에 흙먼지가 쌓인 미닫이 테라스 문틀을 물걸레로 닦고 보스코는 테라스 난간까지 올라와 손을 뻗고 발갛게 물든 담쟁이 잎과 줄기를 걷어낸다. 나 같으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고운 담쟁이 잎이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으면 했는데 그는 매정하게 정리를 해 버린다. 인동초도 난간에서 옆으로 흘금흘금 게걸음을 하는 줄기들은 놓아두고 앞으로 늘어지는 것들은 말끔히 이발해 주었다.
예전엔 저 난간 꽃 받이에 초봄부터 이른 여름까지는 제라늄을, 가을이 시작하면서는 국화 화분을 심어 가득히 올려놓았다. 9월 말에는 이른 국화를, 그 꽃이 지는 10월 말에는 늦국화 화분으로 한 번 더 갈아줘 가을의 정취에 두어 달 넘게 취해 살았다.
이제는 지리산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까 서울집 테라스의 꽃에 대한 추억은 이웃 사람들의 기억에서마저 사라졌다. 그때는 ‘빵기네집’이라든가 ‘알프스집’이라 불렸는데... 우리가 늙어서 병원 가까운 이곳으로 돌아온다 해도 ‘알프스집’의 명성을 되찾을 여력이 남아있을 것 같지 않다.
보스코가 테라스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에게도 저런 면이 있는데’ 어제 점심에 손님이 오셨을 때 전주(前酒)를 내며 안주를 낸다는 게 지질한 스넥을 핑크색 바가지에 담아낸 것을 보고 아연했다. 80년대 중반, 보스코의 박사학위 지도교수 트랄리아 교수님댁에 가면 휠체어에 앉아계신 사모님의 수발을 80이 넘은 노교수님이 하고 계시는데 그집 부엌의 그릇들은 그야말로 고양이 밥그릇으로 새까맣고 집안 전부는 청소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코도 내가 없으면 딱 저렇게 될 꺼야’ 하는 걱정이 늘 내 머리에 남았기에, 손님 대접을 핑크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한 어제일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저 남자 놔두고 내가 먼저 망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
해질녘 가로등이 들어오고 수줍은 초승달이 미루나무 위에 걸리는 시각! 십여 일 간 딱 한 끼 식사를 한 게 전부인데도 며칠간의 습관에 길들여져 자꾸 큰아들이 누르는 초인종 소리가 기다려진다. 걔는 오늘 아침 8시 30분에 예약한 밴에다 짐을 싣고서 자기 가족에게로 갔다. 우리는 이제 아마도 그의 ‘친척’으로 강등되었을 테니 남은 가족은 보스코뿐!
고개 숙이고 하루 종일 작은 글씨의 라틴어들 해독하는 굽은 등이 측은하면서도 사랑스럽고 귀하고 고맙다. 시아 시우는 이번주가 '가을방학'이어서 아빠 없이 엄마와 종일 힘들게다. 오늘밤에 도착하면 내일은 가족들을 데리고 2박3일 파리 여행을 다녀온단다. ‘힘들지 않겠어?’ ‘아빠니까, 아이들만 놔두고 다녔으니까 도리를 해야' 한단다. 저도 얼마나 쉬고 싶겠는가만 책임을 다 하겠다는, 가정을 잘 지켜내겠다는 심정이 든든하다.
‘장가간 아들은 가족이 아니다’라고 내심 억지를 써보지만, 아들이 떠난 뒤엔 걔 옷을 손질해도, 방을 청소해도, 다리미질을 해도 재미가 없다. 아기집에서부터 아들에게 뻗쳐보낸 탯줄을 확실하게 못 끊은 건 늘 엄마다, 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앞으로 멀어져 가는데....
보스코가 어제 저녁 장충동 가서 정신부님과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물수건을 집어 손을 닦는 순간 손바닥이 벌게지고, 입에 그 수건이 스친 뒤에 입술이 독재자 가다피의 입술 처럼 부풀어올랐단다. 그 물수건을 무슨 세제에 담갔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 빨래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 수건 때문인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바로 곁의 ‘수정약국’에서 항히스타민 물약을 먹었다는 보스코, 에프킬라 맞은 모기처럼 오늘 종일 시들시들하다. 평소에 너무 청정 환경에 살다보니 저런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도 올 여름 두 번이나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한 적 있어 걱정스럽다.
이 모진 세상에 살아남으려면 많은 단련이 필요하다. 해질녘 동네 까마귀들도, 도시에 상주하며 전봇대 위에서, 떡갈나무 위에서 생존을 위해 서로 다투는 걸 보니 살아가기 어려운 건 사람뿐만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