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맑음
찬바람이 불어 은행나무 열매를 마구 떨군다. 대학시절 데이트할 때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파랗게 구워져 컵에 소복하게 담긴 은행알이 탐스러워 사보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컵인지 위로 볼록 솟은 컵이어서 야속하게도 담긴 은행알이 몇 알 안 됐다. 그렇게도 귀하던 은행나무가 우리집 담 밖, 쌍문근린공원 입구에 여섯 그루가 크게 자랐다. 그 중 하나만 암나무여서 은행을 주우러 새벽이면 동네 할메들이 누가누가 먼저 일어나나 내기를 했다. 나처럼 9시쯤 나가서는 은행알을 구경도 못했다.
어쩌다 이웃 할베가 큰 돌로 나무둥치를 찍어대자 동네 아짐들이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 일도 있었다. 어느 세월에 덕성여대 약초원길에 노랑 은행나무에 가지가 찢어지게 은행이 달리고 바닥에 수북하게 은행알이 떨어져도 이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 밤늦게 마을길을 올라오는데도 은행이 반말은 실히 되게 떨어져 있는데도 나마저 그 위를 마구 달렸다. 바퀴 밑에 은행 깨지는 느낌은 가난한 시절 봉지 바닥에만 깔려있던 아까운 은행알 추억도 함께 으깨고 만다.
9시, 본당 주일미사 어린이시간. 그 통통하고 조그만 여자애와 키 큰 남자애가 제대위에 복사로 나란히 서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장난꾸러기 남자애가 오랜만에 나타나서 시종일관 의자를 덮은 긴 방석을 갖고서 김밥을 말고 노느라 나머지 애들도 미사들 못 드린다. 선생님도 신부님도 나무라지 않으니 뒤에 앉은 어른들은 이해가 안 된다.
아마 요즘 유치원이나 학교 교실 풍경이 저럴 것 같다. 오늘 ‘애지람’ 음악회에서 만난 아녜스 선생님이 내년 봄에 퇴임을 한다며, ‘애들이 너무 힘들어요’ 하던데 저런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지내자면 참 많이 힘들 거다. 그래도 성가를 부를 때는 얼마나 열심인지 정신 사납던 내 마음이 다시 기도하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11시 엄엘리가 남편과 함께 왔다. 광화문에 일이 있어 가는 길에 잠깐 인사차 들렸단다. 요즘 양원씨는 목수 일을 하는데 민주화 운동과 정치적 투쟁을 하면서도 머리가 아니고 몸으로 노동하는, 건강하고 선선한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다. 대표적으로 머리로만 일하는 우리 보스코에게도 저런 균형 잡힌 모습이 나오도록 내가 손을 써야 할 텐데… 일거리를 찾아 줘서 몸으로 하는 노동을 하도록 맘을 쓰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일에 쫓기니 쉽지가 않다.
3시 반에 집을 나가 강남의 한전아트센터에서 애지람 돕기 자선음악회 ‘어울림’에 참석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 내지 ‘클래식과 국악의 어울림’이었다. 출연자 모두가 재능기부를 하고, 관람자들도 모두가 기부금을 내고, 프란치스코 가족 모두가 너나없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자리여서 진행의 밀도가 남달랐다.
우리가 성한 몸으로 행복하게 사는 게 저들이 우리를 대신해 아프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다. 더구나 귀요미 미루네 부부가 옆자리에 함께 앉아있어 주니까 완전 가족 분위기. 또 오랜만에 은아네 부부도 우리를 보러 왔다가 함께 음악 감상을 하고서 저녁까지 사주고 갔다.
특히 같은 수도회에 형제들을 돕는 일에 저렇게 열심인 강신옥 바오로 수사님의 열성어린 노래, 애지람 가족 하나하나에게 아버지가 되어주는 엄수사님의 자애로움, 그곳 가족들의 밝은 눈빛마다 젖어 있어 있는 ‘사랑받으므로 나는 존재한다’(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명언)는 얼굴이 아름다웠다. 사랑으로 다시 피어난 꽃송이들은 아침이슬을 머금고 태양을 맞는 장미처럼 맑고 밝게 빛난다.
강수사님, 엄수사님은 참 좋은 몫을 택했다. 끝날 무렵 한국 프란치스코 수사님들의 ‘돗자리총회’를 주관하러 오신 작은형제회 총장님과 애지람 식구의 ‘어울림’은 오늘 행사의 절정이었다. “얼마나 좋을 씨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한데 모여 함께 사는 그곳”에 천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