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맑음
아침 일찍은 날씨가 좀 차다. 그래도 우리집 언덕 위 떡갈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일은 너무 아름다워 그런 추위 정도는 견딜 만하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폐 깊숙이까지 꽂히는 햇살을 들이마신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정말 바뀌지 않는 게 대한민국의 보수 언론이다. 저런 언론에서 쏟아내는 가짜뉴스를 듣고 읽어야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인간들에게 바이러스처럼 기생하며 저런 언론들이 생존을 유지하겠지…
산청성심원을 찾아갈 적마다 나균이 무서운 게 통증을 못 느끼는 증세이며, 그래서 손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눈이 멀고 입술이 뒤틀려도 모르고 지난다는 점이다. 국민에게 나병을 퍼뜨려 남북분단도, 독재와 부정축재도, 군대 경찰 검찰 국정원이 모조리 ‘범죄조직’으로 변해도 국민이 그 폐해를 못 느끼게 만드는 주구가 저 언론들이다.
집마당 돌확에서 오늘 개똥지빠귀가 목욕을 하고 있다
우리 소나타의 연세 12세가 넘으면서 사방이 쑤시고 아프단다. 시골 할메들처럼 너무 많이 부려먹어 폼도 영 말이 아니다. 아줌마들은 들일 밭일로 일평생 너무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서 굽은 그 허리를 펴려면 배를 앞으로 내밀고 등을 뒤로 젖힌 채 양손을 사방으로 흔들어 그 동력으로 앞으로 걸어나간다. 같은 여자인데 도회지 처녀들은 S자로 걷고 시골 할메들은 C자를 하고 걷는다. 차로 말하자면 사륜구동이다. 지금 내 차가 딱 그 신세. 이쪽 고치면 저쪽이 망가지고 사방이 돌아가며 손을 흔들어 댄다.
며칠 전부터 체크 등이 다시 들어오는데 스.선생님은 ‘늙은 차니까 노인들이 여기 아퍼, 저기 아퍼 하는 것과 똑같다.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그러니까 체크등은 바라보지 말고 그냥 다니라’는 충고다. 그래도 내게 와서 늙어가는 저 여인을 어떻게 외면만 하랴, 주행거리 257,613 km의 늙은이를?
그래서 애니카 사장님께 찾아갔다. 사장님은 자동차 건강 진단기로 검진을 해보고 ‘산소(O2)센서’가 이상이 있다고 고쳐야 한다더니 서너 시간 후에는 다시 전화를 해 왔다. 산소센서를 고쳤지만 ‘삼원촉매’가 이상이 있어 그것마저 고쳐야 한단다. 이달에도 차한테 돈을 털렸다.
친구들이 65세에 은퇴를 하면 ‘딱 10년’, 그러니까 75세까지는 친구도 만나고, 산에도 가고, 여유와 건강이 받쳐주면 외국여행도 다니지만 그 담은 보장 못한단다. 80을 넘기면 대개 병원 신세를 지고 약에 의존하다 나중에는 몸에 난 모든 구멍에 줄을 꽂고 나머지 인생을 견뎌내야 한다, 무덤이나 화장터로 폐차될 때까지… 오후 늦게 애니카 아저씨가 고쳐서 몰고 온 내 차를 보는 마음, 구멍마다 호스를 꽂고 돌아온 할메를 맞는 애잔한 기분이다.
차를 맡기고 집까지 2km를 걸었다. 도중에 사과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아기 사과를 트럭 가득 실어놓고 ‘몸에 좋고, 맛있고, 값싸고...’를 아무리 외쳐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 옆에서 밤을 기계로 깎아 파는 남자도 ‘한 됫박에 500원’을 목이 쉬어라 외쳐도 할머니 한분이 지나다가 깨진 밤톨을 들고 가실 뿐 도통 관심이 없다.
학교 앞 ‘붕어빵 아줌마’는 곱게 화장하고 앞치마까지 두르고 ‘붕어빵 3개 1000원’을 써 붙이고는 말없이 빵을 구워서 예쁘게 줄 맞춰 쌓아놓는다. 빵굽는 냄새가 너무 좋아 내가 하나 덥석 문다. 모든 길가 노점상은 ‘생계형’으로 한 달에 100만원커녕 50만원도 못 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 생활을 책임지고 있을 텐데… 보스코가 좋아하는 붕어빵만 2000원 어치를 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앞을 지나가기 미안해서 덕성여대 강의동으로 길을 돌았다.
빛깔이 찬란한 붉은 단풍나무 밑을 지나, 음침한 암갈색의 후박나무 낙엽을 보며 ‘가을의 공정함’을 알게 된다. 며칠 뒤면 어차피 잎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서 겨울을 날게다. 두 전직대통령의 부정축재든, 아들에게 대형교회를 세습시키는 교회든, 식물인간으로 누워서도 몇 조원씩 벌어들이는 기업인이든, 아끼던 잎들을 떨구며 헐벗어가는 나무들만도 못하다.
영심씨네 감나무
우리집 단감나무: 서른 개 따 먹고 일곱 개 남았다